<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 (2) 건국준비위원회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 (2) 건국준비위원회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 저자 )
1945년 8월16일 오후 1시 계동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 위원장 여운형이 5천여 군중 앞에서 20여분 간 연설하였다.
8월 17일의 「매일신보」 기사를 읽어보자.
”조선민족 해방의 날은 왔다. 어제 15일 아침 8시 엔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초청을 받아 ‘지나간 날 조선 일본 두 민족이 합한 것이 조선 민중에 합당하였는가 아닌가는 말 할 것이 없고, 다만 서로 헤어질 오늘을 당하여 마음좋게 헤어지자. 오해로써 피를 흘린다는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민중을 잘 지도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이에 대하여 다섯가지 요구를 하였는데 즉석에서 무조건 승낙하였다.
1) 전 조선 각지에 구속되어 있는 정치·경제범을 즉시 석방하라. 2) 8,9,10월 3개월간의 식량을 확보·명도해 달라. 3) 치안유지와 건국사업에 대해 아무 구속과 간섭을 하지 말라 4) 조선 안에 있어서 민족해방의 모든 추진력이 되는 학생훈련과 청년조직에 대하여 간섭말라. 5) 전 조선 각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를 우리들의 건설사업에 협력시키며 아무 괴로움을 주지말라.
이것으로 우리 민족해방의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날에 아프고 쓰렸던 것은 이 자리에서 모두 잊어버리자. 그리하여 이 땅을 참으로 합리적인 이상적 낙원으로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 개인의 영웅주의는 단연코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 일사분란의 단결로 나아가자.
머지않아 각국 군대가 입성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들어오면 우리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하여야 한다. 세계각국은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백기를 든 일본의 심흉을 잘 살피자. 물론 우리들의 아량을 보이자.
세계 신문화 건설에 백두산 아래에 자라난 우리 민족의 힘을 바치자. 이미 전문대학 학생의 경비원은 배치되었다. 곧 여러 곳으로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오게 될 터이니, 그들이 올 때 까지 우리는 힘은 적으나마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김기협 지음, 해방일기1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너머북스, 2011, p 81-82)
그러면 여운형의 건준이 조선의 치안과 행정을 도맡게 된 경위를 살펴 보자. 1945년 8월 11일에 조선총독부는 일본인의 안전 귀국과 생명·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1890∽1945)에게 치안과 행정을 맡아주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송진우는 중경 임시정부만이 통치 권력 이양 권한을 갖고 있다면서 요청을 거부하였다. 14일에 총독부는 송진우와 가까운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 김준연에게도 부탁했으나 김준연은 송진우의 참여 없이는 응하지 않겠다고 하여 역시 무산되었다.
그러자 조선총독부는 여운형(1886∽1947)을 접촉하였다. 8월 14일에 여운형은 총독부 경무국장 니시히로로부터 15일 아침에 총독부 정무총감 엔도의 필동 관저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여운형은 8월 15일 오전 8시 엔도와 만나 일본 측이 요구한 자주적 치안 유지와 일본인들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고, 5가지 조건을 받아 내어 협상을 타결하였다.
이어서 여운형은 우익 지도자 송진우를 직접 찾아가 참여를 요청하였지만, 송진우는 “경거망동을 삼가라. 중경 정부를 지지하여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여운형은 “일제의 탄압 아래서 직접 싸워 온 거대한 세력은 국외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내에 있는 3천만 민중이라면서, 임정은 해외에 30년간 머물면서 이렇다 할 업적이 없고 국내에 인민적 토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로 군림할 수 없으며, 임정은 많은 해외독립 단체가 만든 정부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8월 15일 밤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치안 유지 및 행정권을 인수한 여운형은 조직 구성에 나섰다. 여운형은 1944년 8월에 결성했던 ‘건국동맹’을 모체로 해서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을 발족시켰다.
건준 위원장은 중도좌파인 여운형, 부위원장은 중도 우파인 안재홍이 맡았다. 건준이란 명칭은 안재홍이 제안한 것이었는데, 건준의 강령은
1)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한다. 2) 우리는 전민족의 정치적 · 사회적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정권의 수립을 기한다. 3)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한다 등이었다. (강준만 저, 한국 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2004, p 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