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 (11) 한국민주당 창당

김세곤 2023. 9. 25. 23:05

<김세곤 칼럼> 해방정국 3년 톺아보기 (11) 한국민주당 창당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한제국 망국사저자 )

 

194596일에 건준이 조선인민공화국(이하 인공)으로 개편되자,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는 97일에 국민대회준비회를 결성하였다.

 

동아일보 사옥에서 결성된 국민대회준비회에는 송진우(위원장), 김성수, 서상일, 원세훈(부위원장), 김준연(총무부), 장택상(외교부), 설의식(정보부), 윤치영(경호부) 등이 참여하였다. 국민대회준비회는 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으며, 916일에 한국민주당(이하 한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러면 917일 자 매일신보를 읽어보자.

 

“ 916일 오후 3시부터 한국민주당은 천도교 강당에서 1,600명의

발기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결당식을 거행하였다.

국기 배례, 애국가 제창, 사회 백남훈으로부터 개회사가 있은 후 김병로를 의장에 추천하고 식을 진행하였다.

먼저 원세훈이 제의한 우리 해외 임시정부 요인들과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에 대한 감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이인이 제의한 긴급 건의안 1) 조선은 국제관계상 미 소 양군에게 분단 점령된 바 이것은 불편불행한 일이므로 미국군 당국에 교섭하여 하루바삐 통일적 행정상태가 실현되도록 할 것 2) 현 행정기관에 임시적이나마 일본인 관리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불안과 침체를 초래하니 공정하고 능력있는 인물을 조선인 중에서 채용할 것을 상정하여 만장일치 가결한 다음, 김도연으로부터 대한민주당과 한국국민당이 합동하여 금일에 이른 경과보고, 조병옥으로부터 국내 해외의 정세보고가 있고 선언강령정책을 결정한 다음, 장덕수의 인도로 당원 전체 총 기립 속에 선서가 있었다.

이어서 의장으로부터 당 기구에 대한 설명이 있고 당영수로 이승만 · 서재필 ·김구 ·이시영 ·문창범 ·권동진 · 오세창 7씨를 추대할 것을 제의 가결하고, 대의원 300명을 선거 후 내빈축사가 있고 대한독립만세를 3창하여 445분에 폐회하였다.

 

o 강령

 

1) 조선 민족의 자주 독립국가 완성을 기함

2) 민주주의의 정체 수립을 기함

3) 근로대중의 복리증진을 기함

4) 민족문화를 앙양하여 세계문화에 공헌함

5) 국제헌장을 준수하여 세계평화의 확립을 기함

 

o 정책

 

1) 국민기본생활의 확보

2) 호혜평등의 외교정책 수립

3)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의 자유

4) 교육 및 보건의 기회균등

5) 중공주의(重工主義)의 경제정책 수립

6) 주요 산업의 국영 또는 통제 관리

7)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

8) 국방군의 창설

 

(김기협, 해방일기 1, p 237-238)

 

한편 한민당은 이승만·서재필·김구·이시영·문창범·권동진·오세창 등 7인을 인공처럼 수락도 받지 않은 채 영수로 추대하였다. 이승만 · 서재필 · 김구 등 5명은 해외에 있었고, 국내에 있는 권동진과 오세창도 영수직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준만, 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 편 1, p 83)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우익정당인 한민당의 5대 강령, 8대 정책이다.

5대 강령 중에는 ‘3) 근로대중의 복리증진을 기함8대 정책에는 ‘ 4) 교육 및 보건의 기회균등’, ‘6)주요 산업의 국영 또는 통제 관리’, ‘7) 토지제도의 합리적 재편성등 사회진보적 내용이 들어있는 점이다.

 

즉 한민당은 좌익이 주장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이다. 당시에 한민당은 지주 · 자본가 및 친일파들의 정당이라는 좌익들의 비난과는 달리 다양한 정치세력이 참여하였다. 즉 한민당에는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도 참여하고 있었다.

 

한국국민당장덕수·허정·백남훈·윤치영·윤보선

조선민족당원세훈·김병로·백관수·조병옥·함상훈·김약수·이인

국민대회준비회송진우·김성수·서상일·김준연·장택상·설의식

 

이처럼 식민지 시기에 친일을 하지 않았던 우익인사들이 한민당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념적 동질성과 함께 민족통일전선을 표방한 건준이 인공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좌익세력들에 의해 독선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였다.

(김기협, 해방일기 1, p 240-241)

 

921일에 한민당은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하여 중앙부서를 확정하였는데 당수제 또는 최고위원제를 채택하지 않고 총무제를 채택하였다.

송진우가 수석총무로 선출되어 당을 대표하였으며, 11총무 원칙에 따라 함경도의 원세훈, 전북의 백관수, 경북의 서상일, 경기의 김도연, 경남의 허정, 충남의 조병옥, 황해의 백남훈, 평안도의 김동원이 총무에 선출되었다.

이어서 중앙감찰위원 30명을 선출하였는데 김병로가 감찰위원장을 맡았다. 중앙의 11개 부서는 당무부·외무부·조직부·내무부·선전부·정보부·노동부·문교부·후생부·조사부·연락부 등이었으며, 이인이 당무부장, 장덕수가 외무부장, 김약수가 조직부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