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근현대사 기행(1)] 대구시 근대 골목 투어 (1)
[김세곤의 근현대사 기행(1)] 대구시 근대 골목 투어 (1)
- 기자명 푸드n라이프
- 입력 2023.09.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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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청렴 강의를 하러 대구를 갔다. 오후에 신용보증기금(이사장 최원목)에서 ‘다산 정약용과 목민심서’에 대하여 강의를 한 후에, 지인 두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중에 대구 볼거리를 물었더니 계산성당과 근대골목 거리를 추천했다. 계산성당은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한 곳이고, 근대골목거리엔 서상돈·이상화 고택 그리고 청라언덕이 있다는 것이다.
30일 밤은 동성로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그런데 31일 아침 8시까지 비가 내려 대구 답사는 틀렸고 오후 1시경에 경주행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운 좋게도 9시 반 경에 비가 그쳤다.
서둘러 호텔을 나와 근대 골목투어를 시작했다. 먼저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 250미터’라는 표시판을 따라 약령시장을 걸었다. 도로 양쪽엔 한약국이 즐비하다. ‘대구 근대 골목’ 동상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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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니 ‘약령시 한의약 박물관’이 나온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 3층을 구경하고 2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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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구약령시 연표를 보았다. 주요 연보를 읽는다.
-1658년에 임의백 관찰사 경상감영 객사 내에 약령시 최초 개장
매년 봄(춘령시) 가을(추령시) 2회 개시
- 1700-1800년대 약령시 활성화로 객사 주변 남쪽(남시)와 북쪽(북시) 도로변으로 확장
- 1894년 갑오개혁으로 약재 관부매상이 폐지되고 약상민간단체 약령시 주도
- 1908년 객사로부터 현위치(남성로)로 약령시 이전. 대한매일신보에 최초로 약령시 개시 광고 게재
- 1914년 조선총독부 춘령시 폐쇄
- 1941년 추령시 마저 폐쇄
- 1945년 대구영시진흥위원회 약령시 재개
- 2003년 약령시 테마거리 및 약령공원 조성
- 2009년 약령시 한의학문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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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허준의 초상화가 인상적이다. ‘5장 6부’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5장은 간장·심장·비장·폐·신장이고, 6부는 대정 소장 담낭 위 삼초 방광이다. 장은 내부가 충실한 것, 부는 반대로 내부가 비어있는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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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과 저항시인 이상화 안내판을 자세히 보았다. 이들은 약령시와 이들은 어떤 관련이 있어서 전시되어 있을까?
서상돈(1850-1913)은 1907년 2월 21일 담배를 끊어 국채 1300만 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 (대구시는 숭고한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10월 8일이었던 대구시민의 날을 2020년부터 2월 21일로 변경하였다.)
한편 서상돈은 국채보상운동과 더불어 지역경제기반을 지켜 나가려고
대구 상무소(현 대구상공회의소)를 조직하는 등 많은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한 일환으로서 1914년 9월 ‘시장규칙’ 공포로 대구 약령시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자 대구상무소가 약령시의 운영 주체가 되어 종로 일대에 가설 점포를 설치하는 등 온갖 편의를 제공하여 당해 약령시를 무사히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안내판이 조금 헷갈린다. 서상돈은 1913년에 별세하여 1914년에는 대구상무소에서 활동을 안 했는데 서상돈의 업적처럼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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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1910-1943)는 약령시 인근에서 태어나 10여년(1915-1927)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애를 줄곧 약령시 주위에서 보냈다.
지금까지 약령시를 소재한 시는 발견된 것이 없지만, 1930년 『별건곤(別乾坤)』 통해 발표된 「대구행진곡」이라는 시에는 시인의 저항 정신이 돋보인다.
안내판에는 대구행진곡 시가 적혀 있다. 그런데 4수로 된 시가 두 열로 되어 있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윗부분의 좌우를 읽고 나서 아랫부분 좌우를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왼편의 위에서 아래를 읽고 나서 오른편의 위에서 아래를 읽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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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터넷에서 「대구행진곡」 시를 찾았더니, 시는 왼편의 위 아래를 읽고 나서 오른편의 위 아래를 읽는 것이 맞다.
1
앞으로는 비슬산 뒤로는 팔공산
그 복판을 흘러가는 금호강 물아
쓴 눈물 긴 한숨에 얼마나 쑀기에
밤에는 밤, 낮에는 낮 이리도 우나
2
반 남아 무너진 달구성 옛터에나
숲거늘 우거진 도수원 놀이터에
오고 가는 사람이 많기야 하여도
방천둑 고목처럼 여윈 이 얼마랴
3
넓다는 대구 감영 아무리 좋대도
웃음도 소망도 빼앗긴 우리로야
님조차 못 가진 외로운 몸으로야
앞 뒤뜰 다 헤매도 가슴이 답답타.
4
가을밤 별같이 어여쁜 이 있거든
착하고 귀여운 술이나 부어다고
숨가쁜 이 한밤은 잠자도 말고서
달 지고 해 돋도록 취해나 볼 테다.
(이상화 안내판은 방문객을 위하여 조속한 수정이 필요하다.)
이윽고 ‘약령시 한의학 박물관’을 나와서 불로문을 통과하여 조금 가니 ‘제일 예배당’이 있다. 거기에서 ‘대구 기독교 역사관’이라고 적힌 팻말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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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관에 들어가 여직원의 해설을 들으면서 주마간산으로 구경했다. 아직 계산성당과 서상돈· 이상화 고택 · 청라언덕을 못 보아서 마음이 급했다. 그래도 대구의 기독교 역사는 어느정도 알아야 했기에, 우선 ‘대구 제일교회 약사(略史)’ 관련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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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제일교회는 1891년 3월에 부산에 온 미국 북장로회의 베어드(William M.Baird 배위량) 선교사가 1893년 4월 22일 대구 약전골목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준 첫 전도를 탄생일로 삼는다. 베어드 목사는 1896년 1월에 매입한 남문 안에 있는 정환식씨 소유 420평의 저택 중 1채를 ‘야소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첫 번째 예배당이다.
그런데 1896년 11월에 베어드 선교사가 서울 선교부 교육담당 고문으로 발령이 나자. 대구 선교는 1895년 5월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부산에 온 아담스(James E.Adams 안의와) 선교사가 맡게 되었다.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날 때 이만집 목사는 대구에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투옥되기도 하였다.
대구제일교회는 1994년 새로운 예배당으로 입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 예배당은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30호, 한국기독교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고, 대구기독교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윽고 독립선언문 탁본 체험 공간, 시련 및 신앙 성장기 사진등을 둘러본 후에, 눈에 들어 온 것은 한 쪽 벽에 걸린 ‘피아노 앞에 있는 여성’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1921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으로 피아노 앞에 있는 김병욱 장로 부인 방달순 권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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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독교 역사관을 나오니 교남 YWCA 건물이 있다. 마음이 급해서 곧바로 계산성당으로 향했다. 그 근처에 서상돈 ·이상화 고택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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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국민권익위원회 청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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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생
▲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석사), 영국 워릭대 대학원 노사관계학과(석사) 졸업
▲ 1983년 행정고등고시(27회) 합격
▲ 1986년부터 고용노동부 근무
▲ 2011년에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고위공무원)으로 퇴직
▲ 2011.9-2013.6 한국폴리텍 대학 강릉 캠퍼스 학장 역임
▲ 저서로는 <대한제국망국사 (2023년)>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나대용 장군 평전 (2023년 비매품)> <아우슈비츠 여행(2017년)>, <부패에서 청렴으로(2016년)>,<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2>·<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 <임진왜란과 장성 남문의병>,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義의 길을 가다>, <퇴계와 고봉, 소통하다>, <도학과 절의의 선비, 의병장 죽천 박광전>, <청백리 박수량>, <청백리 송흠>, <송강문학기행 - 전남 담양>,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 <국화처럼 향기롭게>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