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와 김일손 13회 연산군, 「조의제문」을 한 구절 한 구절 해석하다.
무오사화와 김일손 13회 연산군, 「조의제문」을 한 구절 한 구절 해석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연산군은 조의제문 본문을 읽고 한 구절 한 구절 해석하였다.
“(...) 나는 동이족이요. 또 천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회왕을 조문하노라. 옛날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 양흔낭탐(羊狠狼貪)이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죽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紫陽 주자를 말함)의 노필(老筆)을 따라가자니, 떨리는 마음을 공손히 가라앉히며 술잔 들어 땅에 부으며 제사 지내니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그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했다’는 글귀의 조룡은 진시황(秦始皇)인데, 종직이 진시황을 세조에게 비한 것이요,
‘왕을 찾아 얻어서 백성의 소망을 따랐다’고 한 구절의 왕은 초회왕(楚懷王)의 손자 심(心)인데, 처음에 항량(項梁 항우의 숙부)이 진(秦)을 치고 손자 심을 찾아서 의제(義帝)를 삼았으니, 김종직은 의제를 노산(魯山: 단종)에 비유한 것이다.
그 ‘양흔낭탐(羊狠狼貪)하여 관군(冠軍)을 함부로 무찔렀다.’고 한 것은, 양흔낭탐은 세조를 가리키고, 관군을 함부로 무찌른 것으로 세조가 김종서를 벤 데 비한 것이요.”
양흔낭탐은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인데 ‘항우의 말과 행동이 거친 것은 양 같으며 탐욕스럽기는 이리 같다’는 의미이다. 관군(冠軍)은 초나라의 상장군(上將軍) 송의(宋義)를 말한다. BC 207년에 항우는 송의가 제나라와 모의해 초나라를 배신하려 했다는 구실로 제멋대로 죽였다.
연산군의 해석은 이어진다.
“그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 정벌하는 도끼)에 기름칠 아니 했느냐’고 한 것은, 노산이 왜 세조를 잡아버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반서(反噬)를 입어 해석(醢腊)이 되었다’는 것은, 노산이 도리어 세조에게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손이 그 문(文)에 찬(贊)을 붙이기를 ‘이로써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였고, 뜻밖에 종직이 속으로 불신(不臣)의 마음을 가지고 세 조정을 내리 섬겼으니, 두렵고 떨리도다. 동·서반(東西班) 3품 이상과 대간·홍문관들로 하여금 형을 의논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2번째 기사)
이러자 참석한 신하들이 의견을 말하였다. 가장 먼저 정문형· 한치례· 이극균·이세좌·노공필·윤민·안호·홍자아·신부·이덕영·김우신·홍석보·노공유·정숙지가 의논드렸다.
이들은 김종직을 대역죄로 논단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하라고 아뢰었다. 여기에서 이극균은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역 이극돈의 동생이고 좌찬성이었다. 노공필은 영의정 노사신의 아들인데 의정부 우참찬이었다.
이어서 유지는 극형에 처하라고 아뢰었고, 박안성·성현·신준·정숭조·이계동·권건·김제신·이계남·윤탄·김극검·윤은로·이집·김무·김경조·이숙함·이감 도 대역부도(大逆不道)하다며 마땅히 극형에 처하라고 아뢰었다. 변종인·박숭질·권경우·채수·오순·안처량·홍흥도 율(律)에 의하여 처단하라고 말했다.
이윽고 김종직의 문인인 이인형·표연말이 의견을 말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과 지칭한 뜻을 살펴보니 죄가 베어도 마땅하옵니다."
김종직의 제자조차도 김종직을 베라고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이극규·이창신·최진·민사건·홍한·이균·김계행은 김종직의 범죄는 차마 말로 못하겠으니, 율문에 의하여 논단하라고 아뢰었다.
정성근은 그 흉악함을 헤아리지 못하온즉 마땅히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복선은 역신의 율에 따라 논단하라고 말하였다.
이세영·권주·남궁찬·한형윤·성세순·정광필·김감·이관·이유녕이 의논드렸다.
"지금 김종직의 글을 보오니, 말이 너무도 부도(不道)하옵니다. 난역(亂逆)으로 논단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이윽고 사헌부 집의 이유청 · 사간원 사간 민수복·유정수·조형·손원로· 신복의·안팽수·이창윤·박권이 의견을 말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말이 많이 부도(不道)하오니, 죄가 베어도 부족하옵니다. 그러나 김종직이 이미 죽었으니 작호(爵號)를 추탈하고 자손을 폐고(廢錮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 함)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은 나흘 전에 연산군의 실록 열람에 반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종직이 이미 죽었으므로 부관참시라는 극형은 필요하지 않다는 원칙적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