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의 남도 역사기행] 순천 왜성과 노량 (1)
[김세곤의 남도 역사기행] 순천 왜성과 노량 (1)
- 기자명 김세곤 기자
- 입력 2022.04.15 14:56
- 수정 2022.04.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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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역사기행을 다시 시작한다. 2006년에 『정情과 한恨의 역사기행,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 책을 낸 지 16년 만이다. 먼저 가는 곳은 순천(順天)이다. 순천은 이름 그대로 ‘하늘에 순응하면서 사는’ 곳이다.
순천 역사 유적지로 생각나는 것은 순천 팔마비, 옥천서원, 순천왜성과 충무사이다. 순천우체국 앞에 세워진 팔마비는 청렴의 상징이고, 옥천 서원은 1504년 갑자사화로 희생당한 김굉필을 모신 서원이다. 해룡면 신성리 산1번지에 있는 순천왜성(順天倭城)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가 1597년 9월부터 1598년 11월까지 머문 곳이고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과 송희립 · 정운을 모신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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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순천왜성부터 답사한다. 왜성 입구에서 안내판을 읽는다. 이 성은 전라도 지방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왜성으로 1597년 중순 부터 11월까지 3개월에 걸쳐 쌓았다.
1597년(정유년) 9월에 왜군은 경기도 부근 전쟁에서 패한 뒤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 지역으로 남하하였는데 이때 각 지역의 요충지를 찾아 새로운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성을 축조하였던 것은 호남지방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및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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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다가 필자가 주목한 단어는 ‘1597년(정유년) 9월’이다. 1597년 1월에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이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은 해양 세력인 일본이 대륙 세력인 명나라에 최초로 정면 도전한 사건이었다.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약 100년 동안 계속되었던 군웅할거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일본을 통일했다. 그는 대아시아 제국의 건설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 명나라를 정벌하려 했다.
1591년에 히데요시는 귀국하는 조선통신사 황윤길 · 김성일 일행에게 국서를 보내 “명나라를 치는 데 앞잡이가 되라면서 이를 거절하면 조선을 정복하겠다”고 협박했다.
1591년 2월에 선조는 정사 황윤길(서인)이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했음에도,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부사 김성일(동인)의 말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했다.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카가 지휘하는 왜군 2만 명이 7백 척의 배를 타고 부산포에 상륙했다. 왜군은 다음날 부산성을 점령하고 4월 15일 동래성을 쳐들어갔다. 왜군은 싸우기에 앞서서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나무 목판 하나를 전달했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戰則戰矣)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달라.(不戰則假道)
즉 가도입명(假道入明 명나라를 칠 테니 길을 내주라)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송상현은 전투의 의지를 다지는 답신을 보낸다.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戰死易)
길을 빌려주는 것은 어렵다(假道難)
왜군은 즉시 공격하였다. 참패는 시간문제였고 송상현은 순국했다.
왜군은 파죽지세였다. 4월 13일 부산포에 들어온 지 15일만인 4월 28일에 왜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을 조총으로 궤멸시켰다. 신립의 패전 소식을 접한 선조는 4월 30일 새벽에 칠흑 같은 비를 맞으며 서울을 버리고 피난길에 나섰다.
5월 7일에 평양에 들어간 선조는 백성들에게 사수(死守) 의지를 밝혔지만, 6월 11일에 평양을 빠져나갔다. 선조는 계속 몽진하여 6월 22일에 압록강 근처 의주에 도착했다. 6월 23일에 선조는 신하들에게 요동행을 독촉했다. 명나라 땅으로 망명하려 한 것이다. 이러자 류성룡과 윤근수가 극력 말렸다. 다행히도 6월 27일에 명나라에 다녀온 이덕형이 명나라 원군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자 선조의 망명 소동은 잠잠해졌다.
이윽고 명나라 장수 조승훈이 이끄는 명군 3천 명이 참전했다. 하지만 7월 17일에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2만 명의 왜군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해전에서 연거푸 승리한 것이다. 이순신은 5월 7일에 옥포 해전, 5월 29일에는 거북선이 출동하는 사천 해전, 7월 8일엔 한산 대첩에서 승리하여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한편 7월 8일에는 광주목사 권율, 동복현감 황진과 전라도 의병들이 금산군의 이치전투에서 승리하여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았다. 육전 최초의 승리였다.
왜군은 진주에서 전라도로 오는 길목도 차단당했다. 10월 5일에서 10일까지 6일간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 관군과 곽재우, 최경회, 임계영이 이끄는 영·호남 의병은 제1차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1592년 12월에 명군 5만 명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온 이여송은 1593년 1월 8일에 평양성을 탈환했다. 불량기포 · 대장군포 등 화포가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기고만장한 이여송은 여세를 몰아 도주하는 왜군을 추격하여 경기도 파주까지 남하했다가 1월 27일의 벽제관 전투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이여송은 말에서 떨어져 다쳤고 많은 병력이 죽었다. 이러자 이여송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였고 이후 명나라는 일본과 강화교섭에 나섰다.
2월 12일에 왜군은 벽제관 가까운 행주산성을 공격하였다. 서울의 왜군을 배후에서 위협하는 행주산성을 점령하여 근심의 싹을 없애 버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전라도 관찰사 권율이 이끄는 관군과 전라도 의병과 승병은 행주성을 굳건히 지켜냈다. 장성 출신 변이중이 만든 화차 300대가 큰 역할을 했다.
3월부터 명나라와 일본은 강화교섭에 나섰다. 일본은 고니시 유키나가 명나라는 심유경이 교섭 대표였고, 조선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심유경은 고니시에게 서울을 비우라고 통고했다. 고니시는 서울에서 자진 철수하겠으니 왜군 철수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4월 18일에 고니시는 용산 창고에 쌓아둔 곡식 2만 석을 명나라에 남겨주고 서울을 떠났다. 이러자 명군은 조선군에게 일체의 군사행동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조선군은 왜군을 추격했지만 왜군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
5월 말에 1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집결했다. 왜군들은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진주성 공격을 준비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성을 점령한 후에 전라도를 점령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6월 21일에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등이 지휘하는 왜군 10만명이 진주성을 공격했다. 조선은 김천일·최경회· 황진·장윤·고종후 등이 이끄는 호남 의병 3,500명과 진주 관군 2,500명 도합 6천 명이었다. 이들은 6월 29일까지 9일간 진주성을 사수했지만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순국했다. 성이 함락시킨 왜군은 6만 명의 진주성민을 모두 도륙하고 섬진강을 따라 곡성과 구례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명군과 조선군의 반격에 밀려 진주로 퇴각하고 말았다.
1593년 7월 15일에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여수에서 통영 한산도로 진영을 옮겼다. 다음 날인 7월 16일에 이순신은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전략) 난리를 치른 후 그리운 마음 간절했는데, 뜻밖에 하인 편으로 이달 초에 띄어 보낸 편지를 받아 급히 읽어보고 위로 받음이 평상시 보다 배나 되었습니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 그래서 어제 한산도로 진을 옮겨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후략)
그랬다. 8도 중 유일하게 왜군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호남은 병참기지, 병력 송출 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 호남이 조선을 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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