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7)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별세한 현덕빈 권씨

김세곤 2022. 1. 22. 04:38

순례자의 노래 (7)

-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별세한 현덕빈 권씨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437(세종 19) 228일에 세종은 원유관에 강사포 차림으로 근정전에 나아가 양원(良媛) 권씨(1418년 태종 18 ~1441년 세종 23)를 책봉하여 왕세자빈으로 삼는 의식을 가졌다. 책봉하는 교명(敎命)"교지 권씨 위왕세자빈자(爲王世子嬪者)"라 하였다.

 

4년 후인 1441(세종 23) 723일에 세자빈 권씨는 동궁(東宮) 자선당(資善堂)에서 원손(元孫 단종)을 낳았다. 세종은 기쁜 나머지 근정전에 나아가 대사면령을 내렸다. 그런데 세종이 교서(敎書) 읽기를 끝마치기 전에 전상(殿上)의 대촉(大燭)이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 세종은 빨리 철거하도록 명하였다. (세종실록 14417231번째 기사)

 

근정전의 대촉(大燭)이 떨어진 것이 불길했을까? 세자빈 권씨는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산후통으로 별세했다. 그녀의 나이 23세였다. 세종은 5일 동안 조회를 정지했다.

 

916일에 현덕빈(顯德嬪) 권씨의 영구가 발인(發引)하니 도성(都城) 사람들이 모두 울었다. 921일에 세자빈 권씨는 경기도 안산읍(安山邑) 와리산(瓦里山)에 안장되었다.

 

그 지문(誌文)은 이렇다.

 

" ()의 성()은 권씨(權氏)로서 (...) ()는 권전(權專)이고 자헌 대부 중추원사(資憲大夫中樞院使)가 되었다. 어머니 최씨(崔氏)는 최용(崔鄘)의 딸이니, 영락(永樂) 무술 3월 임신(壬申)에 빈()을 홍주(洪州) 합덕현(合德縣)의 사제(私第)에서 낳았다. ()은 나면서 정숙하고 아름다워 외화(外華)가 보통과 다르고, 말과 행실이 예절에 합하였다. 선덕(宣德) 신해(辛亥)에 뽑혀서 세자궁(世子宮)에 들어와 승휘(承徽)가 되었고, 얼마 아니 되어 양원(良媛)으로 승격되었다.

 

정통(正統) 정사(丁巳) 2월에 빈() 봉씨(奉氏)가 부덕(不德)함으로 인하여 폐위(廢位)되매, 드디어 책봉(冊封)되어 빈()이 되었다. 공경히 양궁(兩宮)을 받들매 화()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들고, 좌우(左右)의 잉시(媵侍)들에게는 항상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삼가고 화합하는 미풍을 조성하였다.

 

신유년 723일 정사에 몸을 풀어서 원손(元孫)이 탄생되니, 양궁(兩宮)께서 매우 기뻐하시고, 온 나라 신민(臣民)들이 서로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날 임금께서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시어 교서(敎書)를 반강(頒降)하여 나라 안에 대사(大赦)하게 하시고, 또 장차 원손의 탄생한 예()를 거행하려 하시었는데, 이튿날 무오(戊午)에 갑자기 병이 나시어 동궁(東宮) 자선당(資善堂)에서 운명하셨으니, 춘추(春秋)가 스물 넷이다.

 

(...) 97일에 시호(諡號)를 현덕(顯德)이라 하고, ()를 갖추어 안산군(安山郡)의 고읍(古邑) 산에 장사하였다. ()은 타고난 성품이 한정(閑靜)하시어 입궁(入宮)하여서도 칭찬이 많아, 능히 동궁(東宮)에 짝이 되어 이 원손(元孫)을 낳으셨으니 일국(一國)의 경사이었다. 아아, 슬프도다. ()은 일남 일녀(一男一女)를 낳으셨으니, 여아(경혜공주)는 이미 젖을 떼었고, 남아(단종)는 곧 원손(元孫)이다."

 

또한 애책(哀冊)에 이렇게 적었다.

 

"() 정통(正統) 6724일 무오(戊午)에 왕세자빈(王世子嬪) 권씨(權氏)가 동궁(東宮)의 자선당(資善堂)에서 졸()하였는데, 9월 갑인(甲寅)에 이르러 안산군(安山郡)의 신영(新塋)에 장사하였으니, 예법에 따른 것이다.

 

(...) ()이시어 살아 계시온 듯 안정하시며 평안하소서. 나의 인사(禋祀) 흠향하시어 천지(天地)같이 오래소서. 우리 원손(元孫) 복을 주어 만수무강하게 하소서. 붓을 들어 덕행(德行)을 적사오니, 청사(靑史)와 더불어 길이 전하리라. 아아, 슬프도다. "

(세종실록 14419214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