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후손들

순례자의 노래 (5)- 김시습, 공주 동학사에서 초혼제를 지내다.

김세곤 2022. 1. 19. 06:45

순례자의 노래 (5)

- 김시습, 공주 동학사에서 초혼제를 지내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일손의 탁영선생문집에는 노릉(단종)이 지은 자규사(子規詞)가 수록되어 있다. (김일손 지음, 김학곤 · 조동영 옮김, 탁영선생 문집, 탁영선생숭모사업회, 2012, p 386-387)

 

달 밝은 밤 귀촉도 구슬피 우는데 月白夜蜀魂啾

시름 못 잊어 다락에 기대었네 含愁情倚樓頭

네 울음 슬퍼 내 듣기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

네 소리 없으면 내 시름없을 것을 無爾聲無我愁

이 세상 괴로운 사람에게 말하노니 寄語世上苦勞人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부디 오르지 마소. 愼莫登春三月子規樓

 

김일손은 단종의 시에 차운하여 노릉이 지은 자규사에 추후 갱진하다시를 지었다. 이 시에는 사관(史館 예문관)에 있을 때 느낀 바가 있어서 짓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피 토하는 붉은 입술로 밤새도록 울었기에 血吻紅竟夜啾

슬픈 소리 괴로워서 짐짓 고개 떨구었네 哀聲苦故垂頭

바람을 향해 지는 꽃의 원망을 말해보라 向風說落花怨

비에 기대어 방초의 시름을 전해보라 憑雨傳芳草愁

황폐한(왕이 바뀐) 세상 나그네들에게 당부하노니 寄語老地荒天羈旅人

달 밝은 삼경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소 愼莫登三更月子規樓

 

한편 김시습은 중흥사 모임에서 남효온· 김일손에게 동학사 초혼제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

 

 

1458년 봄에 김시습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145710월에 영월에서 세상을 떠난 단종을 위한 초혼제를 주관했다. 이 제사에는 단종을 몰래 장사 지낸 엄흥도가 단종이 입던 옷을 가지고 달려왔고, 영천에 낙향한 조상치는 단종의 의관과 궤장을 가지고 왔다. 성삼문의 6촌 동생 성담수, 함안의 조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죽은 우의정 정분의 아들 정지산, 전 병조판서 박계손, 전 참판 이축, 전 동지중추부사 송간, 전 교리 성희 및 승려 명선·월잠·운파도 모였다. 이들은 과일과 어물(魚物) 등을 갖추어 삼은각 옆에 초혼각을 만들고 초혼제를 지냈다. 축문은 조상치가 지었고, 김시습은 제문을 낭독하고서 오열했다.

 

그런데 김시습 등이 동학사에서 초혼제를 지낸 것은 세조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었으리라. 1457년 가을에 세조는 오대산과 속리산을 거쳐 동학사에 들렸다. 세조는 피를 많이 묻힌 임금이라서 불심(佛心)에 많이 의지하였다. 세조는 동학사 곁 삼은각과 육신단을 보고 여덟 폭 비단에 병자 원적(寃籍)’이란 네 글자를 쓰고 사육신 등 단종 복위 사건 관련 처형자 100여 명의 이름을 차례로 적었고 초혼제를 허락했다.

 

한편 세조의 초혼제 허용은 단종의 초혼제가 각 지역에서 다발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세조 정권이 단종의 초혼제가 거리에서 대규모로 일어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p138)

 

세조 정권의 우려대로 1458년 여름에 도성에서는 단종을 위한 초혼제가 수시로 일어났다. 1458716일과 728일 세조실록에는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길거리의 무식한 무리들이 초혼을 한다고 핑계하고, 혹은 도성안의 길거리 혹은 냇가에서 떡과 과일을 베풀고 승도(僧徒)를 맞이하여 와서 죽은 혼()을 소리쳐 부르니,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법령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중죄하소서하니, 세조가 그대로 따랐다.”고 적혀 있다.

 

 

한편 초혼제가 끝난 뒤 김시습 등은 각자 흩어졌다. 김시습은 관서로 떠났고, 엄흥도는 종적을 감추었다. 조상치는 영천으로 가면서 김시습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

 

새 울고 꽃 지고 봄이 저무는 때

무한한 충정을 풀잎에나 적어보네.

이별에 임하여 손 마주 잡고 말을 잊었네.

구름 따라 물 따라 동()으로 서(西)로 가야하기에.

 

정권이 권력으로 탄압을 할 수 있어도 임 향한 일편단심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김시습과 엄흥도 그리고 조상치,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참고로 공주 동학사 옆에 있는 삼은각(三隱閣)은 조선 초에 야은 길재가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를 위하여 제사 지낸 곳인데, 1399년에 유방택이 목은 이색과 야은 길재의 제사를 같이 지내면서 삼은각이 되었다.

 

삼은각 옆 초혼각은 나중에 숙모전이 되었다. 여기에는 정전(正殿)에 단종과 정순왕후가 모셔져 있고 좌우에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다. 동무(東廡)에는 안평대군 · 금성대군 등 종실과 김종서 · 황보인 · 정분 세 재상, 김시습·남효온·이맹전·조여·원호·성담수 생육신과 엄흥도·조상치 등 4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서무(西廡)에는 송현수(단종의 장인), 권자신(단종의 외삼촌), 정종(단종의 매형) 등 외척, 민신 · 김문기 등 3중신, 성승 · 박쟁 등 양운검, 박팽년 · 성삼문 ·이개 · 하위지 ·유성원 · 유응부 사육신 등 4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초혼각은 영조 4(1728)에 이인좌의 난으로 불탔는데 고종 시대에 다시 초혼각을 짓고 1904(광무 8)에 숙모전이라 사액하였다. 사단법인 숙모회는 단종 승하일인 음력 1024일에 제향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