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전쟁과 조약의 한국 근대사 (39) 홍시중의 상소 (2)

김세곤 2021. 12. 19. 07:11

전쟁과 조약의 한국 근대사 (39)

- 홍시중의 상소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881323, 홍시중의 상소는 계속된다.

 

또 말하기를, ‘지금의 무기는 새로 나올수록 더욱 기묘한 까닭에 저편이 가지고 이편이 못 가지면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은 벌써 결판이 나는 것이니 각 나라에 가서 제조법을 배워온 다음에야 변란을 당해낼 수 있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크게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헌원씨(軒轅氏) 이후로 병법(兵法)을 말한 사람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지극히 정밀하고 기묘해서 헤아릴 수 없는 한 가지는 임금의 마음에 있는 ()’ 자에 간직되어 있을 뿐입니다.

 

임금이 이 일심(一心)으로 장수를 임명하고 장수가 이 일심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며 군사들이 이 일심으로 상부에 복종한다면 전 부대가 승리하리라는 것은 접전하지 않고도 결정될 것입니다. (...)

 

이제 불행히도 왜인과 화친하여 수로와 육로로 오가는 사람들이 잇달아 보고 들어 우리나라의 실정을 알게 되었으니, 갑자기 왜인을 준엄하게 배척한다면 그것은 왜인에게 트집잡힐 구실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당면한 계책으로서는 새로 조규(條規)를 체결하여 10년에 한 번씩 수신사가 가면 다음 해에는 그들이 오며 그 9년 사이의 사무는 모두 동래부(東萊府)에서 제기하는 대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신이 일본에 가서는 10일 이상을 객관(客館)에 머물지 않고 또 객관 밖에 나가서 놀지도 말 것이고 일본 사신이 우리나라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할 것이며, 사행(使行)의 수행원은 10명으로 정하여 피차 동일한 인원수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국서(國書)’란 것은 그 임금이 새로 들어선 때가 아니라면 사신(使臣)의 배를 보내지 말며 그들의 배를 대기시켜 항구를 열어준 대가를 요구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항구를 세 군데나 이미 허락해 준 것에 대해서는 되찾을 수 없지만 그중 한 군데는 우리나라의 목구멍과 같은 지역이니 단단히 방어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어 목책(木柵)을 설치하고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엄하게 방지하며 인천을 수영(水營)으로 승격시키고 부평을 병영(兵營)으로 승격시켜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방어하게 할 것이며 목책 밖으로 또 몇 개의 진영을 설치하고 군정(軍政)에 지략이 있는 사람을 택하여 두어야 합니다. 항구에는 따로 봉화를 설치하여 저들의 배가 정박하는 것을 봉화로써 알리며 저들의 상선(商船)은 많아도 2, 3척을 거느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시장을 여는 것은 해일(亥日)로 정하여 한 달에 두 차례 사고팔되 교역하는 물건이 서양사람의 손을 거친 것은 일체 엄금하고, 잠상(潛商)도 적발하는 대로 예수교에 대한 형률에 의거하여 즉시 효수시켜 경고시킬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은 물건은 사고파는 것을 허락하지 말며 물건을 사고파는 법()도 공문으로 통지해 오지 않은 것은 몰수하며, 미곡이나 포목과 같은 물건은 세 곳의 항구에서 모두 무역하지 못하게 하며, 또 현물과 현물을 맞바꾸기만 하고 동화폐(銅貨幣)의 사용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본국의 관세는 10분의 5를 정식으로 만들어 우리 사람들은 잇속이 적다고 하여 잘 가지 않고 저 왜인들은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여 잘 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몇 해 안 가서 항구에서 생기는 폐단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른바 중서문견(中西聞見), 만국공법(萬國公法), 공사지구(公史地球), 영환신보(瀛環申報), 흥아회잡사시(興亞會雜事詩), 속금일초공업육학(續今日抄工業六學)등의 책과 황준헌(黃遵憲)조선책략(朝鮮策略)등 허다한 책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종로 거리에서 불태우고 윤음을 내려서 지난날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뉘우침을 진술하게 하고 예수교를 배척하는 뜻을 널리 알려서 만백성들이 명확히 듣고 잘 따르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여 재난을 없애며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성벽처럼 된다면 어찌 왜인이나 서양 사람, 러시아 사람이 강대한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미천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말까지 천시하지 말고 쓸 만한 말이거든 채용하고 쓸 수 없는 말이라면 임금을 기만한 신의 죄로 다스려주소서."

(고종실록 18813234번째 기사)

 

그런데 황재현, 홍시중의 상소문을 본 고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의정부로 하여금 품처(稟處)토록 하라고 전교했다. (고종실록 18813235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