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길을 따라서

고종, 수신사 김기수 일행을 일본에 보내다.

김세곤 2021. 12. 1. 16:14

전쟁과 조약의 한국 근대사 (29)

- 고종, 수신사 김기수 일행을 일본에 보내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지 19일 후인 1876222일에 의정부에서 아뢰었다.

 

"지난번에 일본 사신의 배가 온 것은 전적으로 우호를 맺기 위한 것이었으니 선린(善隣)하려는 우리의 뜻에서도 마땅히 전권사신(全權使臣)을 파견하여 신의를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사신의 칭호는 수신사(修信使)라고 할 것이며 응교(應敎) 김기수(金綺秀)를 특별히 가자(加資)하여 임명하되, 수행 인원은 일에 밝은 사람으로 선택하여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호를 맺은 뒤 처음 있는 일이니, 이번에는 특별히 당상(堂上)이 서계(書契)를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러자 고종이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18762221번째 기사)

 

수신사(修信使)라는 이름은 종전의 통신사(通信使)라는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나, 근대적인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과 일본 양국이 호혜평등의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의미에서 수신사라 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수신사 파견은 강화도 조약 조인식 직후 개최된 연회석상에서 일본측 전권대신 구로다 기요타가의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대저 교린지도(交隣之道)는 풍속을 자세히 시찰 한 연후에 돈독히 될 수 있으니, 귀국(貴國)에서 먼저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귀국 사신의 내왕도 화륜선(火輪船)을 이용한다면 부산에서 도쿄까지 6, 7일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로다의 요청에 그동안 일본과의 외교에 소극적이었던 조선 정부는 대단히 이례적으로 즉각 대응했다. 구로다는 조선 측이 사신 파견을 6개월 이내에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조선 정부는 강화도 조약 체결 후 19일 만에 사신 파견을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정부가 곧 바로 수신사를 파견하기로 했던 것은 메이지유신 후 일본 국내의 물정 탐색이 목적이었다. 특히 일본의 군사시설과 군사력 파악이 주된 관심이었다.

 

이리하여 고종은 응교 김기수를 예조참의(지금의 외교부 국장)로 승진시켜 수신사로 삼았고, 수신사 파견은 1811(순조 11)에 통신사가 파견된 이후 장장 65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44일에 고종은 수신사(修信使) 김기수를 소견(召見)하였다.

 

고종이 하교하였다.

 

"이번 길은 단지 멀리 바다를 건너가는 일일 뿐 아니라 처음 가는 길이니, 모든 일은 반드시 잘 조처하고 그곳 사정을 반드시 자세히 탐지해가지고 오는 것이 좋겠다."

 

김기수 : "삼가 하교(下敎)에 따라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고종 : "대체로 보고할 만한 일들은 모름지기 빠짐없이 하나하나 써 가지고 오라."

 

김기수 : "삼가 하교하신 대로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

(고종실록 1876442번째 기사)

 

이리하여 김기수를 대표로 하는 수신사 일행 76명은 44일 서울을 출발하였다. 일행에는 일본어 통역관 현석운과 고영희가 포함되어 있었다.

부산 동래에 도착한 일행은 429일에 일본 화륜선 황룡환(黃龍丸)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황룡환은 메이지 천황 자신을 위시하여 천황의 칙사를 위한 전용 배였다.

 

수신사 일행은 이튿날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한 뒤 며칠동안 시모노세키와 고베를 둘러본 후 도쿄로 떠났다. 57일에 요코하마 항에 도착한 김기수 일행은 배에서 내려 화륜거(기차)로 갈아타고 도쿄로 갔다. 기차를 타자 일행들은 근대식 문물에 매우 놀랐다.

 

도쿄에 도착한 일행은 영빈관인 엔료칸에 머물렀다. 다음 날인 58일에 수신사 김기수는 통역사 현석운을 대동하고 외무성을 공식방문하여 외무경 데라시마 무네모리를 비롯하여 외무성 관계자를 면담했다.

 

이 면담에서 김기수는 예조 판서 명의의 서계를 데라시마 외무경에게 전했고 예물도 전달했다. 이것이 김기수의 공식적인 임무였다.

 

임무를 마친 김기수는 곧바로 귀국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일본 측은 몇 달 더 머물면서 유람이라고 하라는 인사말을 했다. 김기수는 수신사 임무를 마쳤으니 속히 돌아가 보고해야 한다고 대답하며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