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망했나 부패망국

조선망국사 서장

김세곤 2021. 10. 29. 06:30

조선망국사 서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 단재 신채호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4블록 입구

 

1392년에 개국한 조선이 518년 만인 1910829일에 망했다. 왜 망했나?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기번은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을 내부에서 찾았다. 2012년에 발간된 '로마 멸망사'의 저자인 영국의 역사학자 골즈워디는 로마 멸망의 원인을 내부 요소는 물론 외부 요소들도 살폈다. 이처럼 조선 망국(亡國)의 원인도 내부와 외부 요인 등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망국의 원인 규명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망국의 과정을 제대로 살펴보는 일이다. 망국의 과정을 제대로 알다 보면 망국의 원인은 저절로 규명될 수 있다.

 

한편 역사가 다 그렇듯이 망국의 과정은 역사적 사실(팩트)’에 충실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흥미에 치중하는 역사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 그리고 소설은 종종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다.

 

서장 (序章)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 188745, 영국 액턴 경(Lord Acton 18341902)

 

# 1817, 강진에서 유배 중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방례초본(邦禮艸本 나중에 경세유표 經世遺表로 개명)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윽이 생각건대 대개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병통 아닌 것이 없는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방례초본 서문을 쓴 지 93년 만인 1910년에 조선이 망했다.

 

조선이 왜 망했나? 결과론을 중시한 역사학자들은 일본 제국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선이 부국강병했다면 그리 쉽게 일본에게 망했을까? 양계초는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조선의 망국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그 목적이다.

100년간에 걸쳐 조선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하여 망국의 길을 걸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 권력의 사유화 내지 권력 독점은 망국을 자초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했다. 1805(순조 4)부터 헌종, 철종까지 안동김씨, 풍양조씨의 60년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외척들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했다. 매관매직은 풍습이 되었고, 수령과 아전의 수탈은 일상이었으며, 삼정(三政)의 문란(紊亂)이 극에 달했다. 매천야록을 쓴 황현(18551910)수령과 아전은 강도와 다름없었다.’고 개탄했다.

 

1862년에 임술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3개월 사이에 70여 개 삼남지역에 퍼졌다. 당황한 안동김씨 정권은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개혁안을 공포했다. 하지만 농민항쟁이 수그러들자 개혁안은 11월에 폐지되었다. 지배층이 이권을 포기할 리 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 186312, 12세의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대원군이 섭정하였다. 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축출하고 양반에게도 군포 징수, 사창제 실시, 서원의 철폐 등 일련의 개혁을 실시했다. 그러나 대원군 경복궁 중건과 쇄국정책 추진, 병인박해는 악수였다.

 

187311월에 10년간의 대원군 섭정이 끝나고 고종이 친정하자 이번에는 민왕후의 척족들이 판을 쳤다. 다시 민씨 외척 정치였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민씨들이 정권을 잡자 백성들이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자주 탄식하며 도리어 대원군 시절을 그리워했다.”’고 적었다.

 

고종과 민왕후는 돈을 물 쓰듯 썼다. 대원군이 십 년간 모은 국고를 일 년 만에 탕진한 것이다. 이때부터 벼슬을 팔고 과거를 파는 나쁜 정치가 잇달아 생겨났다.” (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p50, 54)

 

1894110일 밤에 고부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이어서 전봉준이 주도한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와 장성 황룡천 전투에서 관군을 대패시키고 427일에 전주성에 입성했다.

 

이에 놀란 고종과 민왕후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특히 민왕후는 대원군이 동학농민을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소문에 신경질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의 악몽 때문이었다. 임금과 왕비가 청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기 백성을 진압하려 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 (박은식 지음, 한국통사, 범우사, 1999, p 142)

 

 

이윽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18952월에 막강하다고 소문난 청나라 북양함대는 일본해군에게 궤멸당했다. 부패 때문이었다. 여제(女帝) 서태후가 60세 회갑을 맞아 북경 이화원을 중수하느라 해군예산을 몽땅 쓴 것이다. 북양함대에는 포탄이 단 세발 밖에 없었다 한다.

 

# 19042월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은 승승장구하여 1905527일에 일본해군은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고, 1117일에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교활한 일본은 을사늑약을 전후하여 황실과 대신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19051211일의 일본 내부 기밀문서에 의하면 일본 하야시 공사는 기밀비 10만 원 중에서, 2만 원(지금으로 환산하면 25억 원) 1111일 무기명 예금증서로써 심상훈을 거쳐 궁중에. 3,000 1112 구완희에게, 3,000 1116 이하영에게, 5,000 1122 이지용에게, 5,000 1122 이근택에게, 1만 원  1122 이완용에게 지급하고, 15,000 박제순 외 두 대신에게 추후 지급해야 할 것 총계 금 61,000원을 지출한 차액 39,000()을 반납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기록 통감부 문서, 주한일본공사관기록 24, 11 보호조약 1-3, (195) 임시 기밀비(機密費) 지불 잔액 반납의 건)

 

 

# 190778일 밤에 헤이그 특사 이위종은 헤이그 시내에 있는 언론인 클럽 국제협회에 초대되었다. 그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 200명 앞에서 유창한 불어로 일본의 침략에 희롱당한 조국의 처지를 대한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란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의 연설에는 러일전쟁 초기에 대한제국은 국민과 정부 모두가 우리나라의 독립과 영토의 주권을 보장하겠다는 일본의 진지한 약속을 확실히 믿고 일본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협약에 의거하여 대한제국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사기지를 일본에 개방하고 또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러시아와 싸우는 일본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다방면으로 도왔습니다.

 

()정권 (고종 정권을 말함)의 부패, 수탈과 학정(虐政)에 지쳐 있던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기대와 희망으로 맞이하였습니다.

당시에 우리들은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만민에게는 정의를 구현하며, 행정 당국에게는 솔직한 조언을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이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김영사, 2019, p 157-159)

 

이처럼 고종 황제의 신임장을 소지한 헤이그 특사 이위종은 고종의 정권을 부패, 수탈, 학정의 정권으로 몰아세웠다.

 

# 1910829일에 일본은 조선을 병탄했다. 1910914일에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국풍보(國風報)>에 발표한 조선 멸망의 원인에서 망국의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합병조약이 발표되자 이웃 나라의 백성은 오히려 조선을 위해 흐느껴 울며 눈물 흘렸는데, 조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놀며 만족했다. 더구나 고관들은 날마다 출세를 위한 운동을 하고, 새 조정의 영예스러운 작위를 얻기를 바라며 기꺼이 즐겼다.” (량치차오 지음·최형욱 엮고 옮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p 100)

황실은 이왕가로 격하되었지만 왕공족이 되어 세비도 받고 잘 살았다.

송병준과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을사 5등 매국 친일파 76인은 일본으로부터 귀족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 한규설은 작위를 반납했다.

 

한편 금산군수 홍범식,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 승지 이만도, 승지 이재윤, 환관 반학영, 유생 김도현등이 순국했다. 매천야록의 저자인 매천 황현(1855-1910)910일에 구례 자택에서 유서와 절명시 4수를 남기고 다량의 아편을 먹고 순국했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 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 이미 가라앉아버렸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 곰곰이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식자 노릇 정녕 어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