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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62·끝)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김세곤 2020. 10. 12. 07:32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62·끝)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승인 2020-10-12 07:00:0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42년 8월9일에 레닌그라드에서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작곡한 7번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레닌그라드 봉쇄가 11개월 되는 때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쇼스타코비치는 1937년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였다. 1941년에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소방대원으로 콘서바토리 건물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고 건물이 불에 타지 않도록 감시했다. 소방대원으로 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사진은 1942년 7월 ‘타임지’의 표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의 진정한 임무는 전시(戰時)에 애국심을 고취 시킬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는 일이었다. 그는 1941년 7월에 교향곡 7번 작곡을 시작했다.

“지금껏 나는 내 작품을 누구에게도 헌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향곡만큼은 레닌그라드에 바친다. 내가 쓴 모든 것, 내가 이 안에 표현한 모든 것은 사랑하는 나의 조국과 연결되어 있고, 파시스트의 억압으로부터 이 도시를 지키는 역사적인 일과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그는 1악장을 8월 29일에 완성했다. 2악장은 9월 17일에 완성했는데, 이 날 쇼스타코비치는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1시간 전 저는 교향곡의 두 악장을 완성했습니다. 제가 이 곡을 들려드리는 데에 성공한다면, 또한 세 번째, 네 번째 악장을 완성할 수 있다면, 아마도 저는 이 곡을 저의 7번째 교향곡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사실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냐구요? 제 이야기를 듣는 청취자 여러분에게 레닌그라드에서의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앞으로 승리를 거두게 될 때의 아름다운 시절’을 묘사하는 3악장을 9월 29일에 완성했다.

이틀 뒤인 10월1일에 쇼스타코비치와 그의 가족들은 이주명령을 받고 레닌그라드를 떠났다. 10월 15일에 그의 가족은 카자흐스탄 근처의 쿠이비셰프로 가는 기차를 탈 것을 명령받았다.

1942년 3월 5일에 쿠이비셰프 문화의 집에서 사물리 사모수드가 지휘하는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는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을 초연하였다. 공연실황은 이례적으로 소련 전역에 라디오로 생중계되었다. 초연을 들은 소련 언론들은 “파시즘에 대한 강한 저항과 승리의 의지를 담은 역작.”이라고 대서특필했다.

한편 스탈린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레닌그라드에서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연주를 추진했다. 그리하여 1942년 8월 9일, 연주자들은 다시금 악기를 들고 모였고, 최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던 단원들도 콘서트홀로 돌아왔다.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던 날, 레닌그라드 최전선의 군인들을 지휘하던 고보로프 장군은 적들을 향해 선제공격을 명령하여 적들의 공격으로 인해 연주가 중단되지 않도록 했다. 필하모닉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 연주는 스피커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중계가 되었다. 또한 적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레닌그라드 바깥에서 진을 치고 있던 독일군에게도 이 연주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공연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생존과 승리의 의욕을 불러일으켰고, 공연 후 1시간이나 박수가 이어지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네바강에서 본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김세곤 제공



쇼스타코비치는 1942년에 스탈린상을 받았다. 인민의 애국심과 소련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이 곡은 ‘진혼곡’이라고 못 박았다.

‘스탈린이 이미 철저히 파괴하고 히틀러가 마지막 타격을 가한 레닌그라드에 관한 진혼곡이었다. 포위된 레닌그라드는 스탈린에 의해 이미 철저히 파괴된 고아와 같았다.’ (방일권, 상트페테르부르크, 살림, 2004, p 84-85 )

1945년에 스탈린은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 칭호를 부여했다. 이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독일의 포위 공격을 900일 동안 이겨낸 데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이제 62회에 걸친 상트페테르부르그 기행 연재를 마친다(다음 연재는 프라하 기행). 아쉬운 점은 러시아 음악과 발레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 점이다. 만약 상트페테르부르그를 다시 간다면 꼭 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 기념관을 가고 싶다. 곁들여서 네프스키 수도원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 묘소, 레니그라드 영웅 박물관 관람과 러시아 음악과 발레 감상도 하련다.

발레 지젤(2007년 방문때).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