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칼럼>『목민심서』는 호찌민의 애독서인가? (3) 박헌영의 『목민심서』 기증설
<김세곤칼럼>『목민심서』는 호찌민의 애독서인가? (3)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박헌영의 『목민심서』 기증설
등록날짜 [ 2020년09월22일 10시33분 ]
2006년 1월 9일 연합뉴스에 김선한 하노이 특파원이 쓴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유품을 모은 호찌민박물관과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2009년에 안재성은 <박헌영 평전(실천문학사, 2009.8.28.)>에서 박헌영은 호찌민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책 앞부분에 수록하고, ‘1929년 모스크바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단야, 박헌영, 양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뒷줄 맨 왼쪽은 베트남의 호찌민,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세죽.’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사진 1 박헌영의 국제 레닌학교 재학 중 사진 (2009년 <박헌영 평전>에 수록)
또한 <박헌영 평전> 146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주석을 달았다.
“학생 중에는 베트남 공산당의 젊은 지도자 호치민도 있었다 한자 발음대로 호지명이라 불리던 그는 박헌영과 각별히 친해서 조선의 역사와 사상을 알게 되었다. 박헌영은 그에게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를 선물했다. 나라의 관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인민을 대해야 하는가를 기록한 이 책은 장차 베트남의 지도자가 되는 호치민에게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28)
사진 2 2009년 <박헌영 평전> 146페이지
그리고 주 28)(책, p 627)에 이렇게 적었다.
“박헌영이 준 『목민심서』는 베트남 하노이의 호치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박헌영은 이 책에 친한 벗이란 뜻의 붕우(朋友)라는 한자가 포함된 서명을 하여 선물했다고 한다.”
사진 3 2009년 <박헌영 평전> 주) 28
그런데 안재성이 책 앞부분에 수록한 사진은 2004년에 임경석 교수가 출간한 <이정 박헌영 일대기>에 실린 사진이다. 임경석 교수는 이 사진에 ‘주세죽의 유품에서 박비비안나 제공’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이러자 많은 사람들은 <박헌영 평전>을 믿었다. 더구나 박헌영과 호찌민이 같이 찍은 사진을 의심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2년 뒤인 2011년 5월 17일에 조선대학교 ‘한국 베트남 국제학술대회’에서 최근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박헌영이 호찌민에게 목민심서를 선물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교수는 박헌영이 1929년 국제 레닌학교 재학시절 찍은 사진의 호찌민은 얼굴 등이 판이하며, 박헌영(1900∼1956)과 호찌민(1890∼1969)의 연표를 보아도 두 사람은 만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호찌민의 목민심서 소지설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7년 11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린 '호치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 축하 영상 메시지에서 “베트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호찌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 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24일에 베트남 교민잡지사 ‘굿모닝베트남’이 ‘다산연구소’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다.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이 탐독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이 목민심서를 호치민 주석에게 선물하였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위 사실이 진실인지 알고 싶네요.”
다산연구소는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탐독 이야기는 근거가 전무 합니다. 국제 레닌학교 시절, 박헌영과 호치민 주석의 목민심서 일화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고 게시판에 답변했다.
한편 2020년 1월에 인문정신 출판사는 안재성이 지은 <박헌영 평전>을 발간했다. 안재성이 11년 만에 <박헌영 평전>을 다시 쓴 것이다.
너무 놀랍게도, 2020년 발간 <박헌영 평전>엔 박헌영이 호찌민과 같이 찍었다는 사진을 포함하여 호찌민 관련 글이 통째로 빠져 있다. 1) (안재성, 인문정신, 2020.1.23, p 158)
사진 4 2020년 <박헌영 평전> 158페이지
다시 말하면 2020년에 발간된 <박헌영 평전>에는 사진도 아예 수록되지 않았고, ‘호찌민’이란 단어가 단 한 글자도 안 나온다. 이는 2009년의 <박헌영 평전>에서 ‘박헌영이 호찌민에게 목민심서를 주었다’는 글이 거짓임을 저자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늦게나마 저자 안재성이 허위임을 시인했음은 다행이다. 저자로서는 고뇌에 찬 결정이었으리라.
1) 2009년과 2020년 책 관련 부분을 비교하면 2009년(p146) 책은 ‘각자 익숙한 언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 학생중에는 베트남 공산당의 젊은 지도자 호치민도 있었다.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28), 주세죽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인데, 2020년(p158)책은 ‘각자 익숙한 언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주세죽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로 되어 있어, 호찌민에 대한 글은 아예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