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세계여행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3) 죄와 벌 – 에필로그

김세곤 2020. 8. 10. 17:47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53) 죄와 벌 – 에필로그

승인 2020-08-10 07:53:12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이제 '죄와 벌'의 에필로그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8년 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감옥에서 노역했다. 소냐는 그를 따라갔다. 그녀는 감옥 옆에서 삯바느질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의 근황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편지로 전했다.

소냐가 쓴 마지막 편지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위중한 병에 걸려 죄수용 병동에 앓아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순절이 끝날 무렵과 성 주간 내내 병원에 누워있었다. 이때 그는 병상에서 꿈을 꾼다. 인류가 전염병에 감염되어 전멸한다는 무서운 꿈이었다.

봄이 지나자 그는 퇴원했다. 감옥에 와서야 그는 소냐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냐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조만간 야외 작업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날도 화창하고 포근했다. 그는 강기슭으로 작업을 나가 황량한 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맞은 편 먼 강기슭에서 노래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 그곳에는 자유가 있고 이곳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곳은 아예 시간이 멈춘 듯 아브라함과 그 양떼의 세기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중략)

갑자기 그의 옆에 소냐가 와 있었다. 살그머니 다가와 나란히 앉은 것이었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2권, p 496)

이 때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의 눈은 무한한 행복으로 빛났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날 저녁, 라스콜리니코프는 판자 침대에 누워 그녀를 생각했다. 자기가 항상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창백하고 여윈 얼굴을 또한 떠 올렸지만 이제는 이런 추억도 별로 괴롭지 않았다. 이제 자기가 얼마나 무한한 사랑을 쏟아야만 그녀의 이 모든 고통을 보상할 수 있을지 알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날 오직 느낄 따름이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 ( 위 책, p 497-498)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는 것은 이념이 아닌 삶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이리라.

소설은 이어진다.

그의 베개 밑에는 복음서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기계적으로 집어 들었다. 이 책은 그녀의 것으로서 그에게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어준 바로 그 책이었다. (위 책, p 498)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 방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소냐에게 리자베타가 갔다준 신약 성경책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어 달라고 한다. 그녀는 하느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왜 읽어달라는 거냐고 말하였지만, 그는 읽어주라고 고집부린다.

소냐는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었다. 19절에 이르렀다.

“많은 유대인이 오빠를 잃은 슬픔에 젖은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중략)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김연경 옮김, 죄와 벌 2권, p 93-95)

이제 소설은 끝난다.

유형 생활 초기에 그는 그녀가 종교문제로 자기를 괴롭힐 것이라고, 복음서 얘기를 꺼내고 그런 책을 강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단히 놀랍게도,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고 복음서를 권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병이 나기 얼마 전 그가 먼저 부탁을 했고 그녀는 그 책을 말없이 갖다 주었다. 그때 이후 그는 여태껏 펴 보지도 않고 있었다.

지금도 그것을 펴 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서는 한가지 생각이 번득였다. ‘과연 그녀의 신념이 이제 나의 신념이 될 수는 없을까? 적어도 그녀의 감정, 그녀의 갈망이라도 ......

그녀도 그날 하루 종일 달떠 있었고 밤에는 심지어 병이 재발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행복하여 거의 자신이 행복에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칠 년 겨우 칠 년! 이 행복이 막 시작됐을 무렵, 어떤 순간에는 그들 둘 다 칠 년을 칠 일처럼 바라볼 준비가 돼 있었다.
(중략)

하지만 여기서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이자 점차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점차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 여태껏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아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것은 새로운 얘기의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 우리의 지금 얘기는 끝났다. ( 위 책, p 498-499)

마침내 '죄와 벌'을 완독했다.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에필로그에서 ‘라자로의 부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념에서 영성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쓰고자 함이었을까?

도스토예프스키 동상(블라지미르 광장 앞).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