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세계여행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48)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중살인

김세곤 2020. 7. 6. 09:21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48)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중살인

승인 2020-07-06 07:55:08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죄와 벌』책을 사다.
'죄와 벌'은 6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번역서는 1000페이지가 넘는다. 그래서 '죄와 벌을 완독한 사람은 드물지만, 누구나 다 안다’는 우스갯 소리가 생겼다.

그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본 필자는 책에 밑줄 치고 메모도 하면서 완독할 생각으로 책(김연경 번역, 1,2권, 민음사)을 구입했다.

1부에서 법대 중퇴생 라스콜리니코프는 도끼로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죽인다. 1부는 148페이지나 되는 분량인데 라스콜리니코프가 이중 살인을 하기까지 3일간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첫째 날은 전당포 사전 답사, 둘째 날은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배회, 셋째 날은 노파와 여동생 살해이다.

그러면 3일간의 과정을 살펴보자.

# 첫째 날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7월 초 굉장히 무더울 때 저녁 무렵에 한 청년이 s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쓰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듯 천천히 k 다리 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계단에서 주인아주머니와 만나는 것을 용케 피했다. 그의 골방은 높은 5층 건물의 지붕 바로 밑에 있어서 사람 사는 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벽장 같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연경 옮김, 죄와 벌 1, 민음사, 2012, P 11)

여기에서 s 골목은 스톨랴르니 골목을, k 다리는 코쿠슈킨 다리를 지칭한다. 코쿠슈킨 다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보예도프 운하에 놓인 21개 다리 중 하나로, 길이가 20m도 채 안 되는 짧은 다리인데 청년은 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됐다. 심지어 자기 집 대문에서 몇 발짝 씩을 가야 할 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 730 걸음이었다.”

청년은 하숙집에서 전당포까지의 거리까지 정확히 세어놓았다. 그만큼 치밀하다.

“그는 한 쪽 벽은 운하를 다른 쪽 벽은 oo거리를 향해 있는 몹시 거대한 건물로 다가갔다. 이 건물은 자잘한 셋집으로 가득차 있었고, 재봉사,기술공, 식모, 다양한 독일인들, 몸파는 아가씨들, 하급 관리 계층등 온갖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위 책, p 16)

청년은 이 건물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쥐, 벌레, 곤충, 이 등과 더불어 악마적 인격의 상징 기호였다.

전당포 노파는 이 건물 4층에 살고 있었다. 청년은 노파의 아파트에 들어간다.

전당포 노파가 사는 건물. 사진=김세곤 제공


“라스콜리니코프라는 대학생입니다. 한 달쯤 전에도 왔습니다만”

“기억하다마다. 학생. 학생이 왔던 것은 아주 잘 기억나요.”

소설에서 처음으로 ‘라스콜리니코프’ 이름이 등장한다. 라스콜리니코프란 이름은 러시아어 "라스콜(raskol)"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데 라스콜은 "분리, 분열"을 의미한다. 정신분열, 종교분열, 민족 분열 등등.

“이 시계는 좀 많이 나갈까요. 알료나 이바노브나?”

그는 전당포 주인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에게 은시계를 저당 잡힌다.

그는 4루블을 주라고 했지만 노파는 1루블 50코페이카를 쳐주겠다고 한다. 다른 목적이 있는 라스콜리니고프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노파는 한 달 선이자를 받고, 지난번에 2루블에 맡긴 반지 저당 연장 이자도 제한 뒤, 1루블 15코페이카를 건넸다. 참 지독한 고리대금업자이다.

현관으로 나가며 라스콜리니고프는 물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 한데 집에 항상 혼자 계십니까. 동생분은 안 계시고요?”

“그 애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요, 학생?”

“별건 아닙니다. 그냥 물어봤을 뿐입니다. 그럼 이제 ...... 안녕히 계십시오, 알료나 이바노브나!”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는 60세쯤 보이며 14등관의 미망인이다. 그녀의 이복동생(어머니가 달랐다)은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로서 백치에 가까운 35세의 처녀로서 언니 집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었는데 수시로 애를 배고 있었다. 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와 리자베타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위 책, p 115와 121)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야말로 당혹감에 쌓인 채 밖으로 나왔다. 이 당혹감은 점점, 점점 더 커져갔다.

걷다가 그는 지하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한쪽 구석, 끈적끈적한 탁자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고는 첫 잔을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 당황할 이유는 전혀 없다!” (위 책, p 23 )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