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세계여행

상트페테르부르크(32) 푸시킨 아내 나탈리야의 바람기

김세곤 2020. 3. 16. 12:01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2) 푸시킨 아내 나탈리야의 바람기

승인 2020-03-16 10: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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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835년 들어 푸시킨의 처지는 점점 비극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 나탈리야의 궁정 연회 출입은 더욱 잦아졌고, 검열은 심해져서 그의 개인적인 편지까지도 일일이 감시했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이 냉대를 받게 되는데 '보리스 고두노프'가 출간되었을 때 비평가들은 푸시킨의 재능이 이제 소멸되었다고 혹평했다.

푸시킨은 고립무원이었다. 주변은 악의· 조롱 ·몰이해· 질투투성이였다.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은둔하고 싶었다.

1834년에 쓴 시 “때가 왔도다, 벗이여!”가 당시의 심정을 잘 나타내 준다.

“때가 왔도다, 벗이여, 때가!
가슴은 안식을 찾고 있소.
세월은 줄지어 지나가고
남은 나날 시시각각 줄어
그대와 함께 살고 싶지만
언젠가 죽을 것이요.

이 세상에 행복은 없어도
안식과 자유는 있는 법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운명을 꿈꾸어왔소.
나 고달픈 노예는 오래전부터 도망치고 싶었소.
창작과 순결한 기쁨이 있는 먼 은둔처로.”

(모출스끼 지음,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들, 씨네스트, 2008, p 64)

1835년 6월1일에 푸시킨은 가계를 정리하기 위해 3~4년 정도 시골에서 살기를 허가해줄 것을 니콜라이 1세에게 청원했다. 황제는 허가하지 않았다. 부채는 정부 대출을 받아 해결하라고 하였다. 7월에 푸시킨은 거액의 부채를 갚고자 정부로부터 3만 루불을 대출받았다. 시종보의 봉급이 5000불이었으니 6년간 근무해야 갚을 수 있었다.

푸시킨은 마지못해 힘든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속없는 아내 나탈리야의 유흥은 더욱 심해졌고, 아내 나탈리야의 언니 예카테리나와 여동생 알렉산드라가 1834년부터 푸시킨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어 생활비가 더 많이 들었다.

푸시킨은 궁정 안에서의 허식과 고관들의 위선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푸시킨을 미워했다. 아니, 그를 파멸시키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네셀리로제 외무성 장관, 벤켄도르프 헌병대장들이 그들이었다. (푸시킨 지음 · 박형규 옮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씨네스트, 2009,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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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무도회에 참석한 푸시킨 부부 초상화, 푸시킨 박물관 소장. 사진=김세곤 제공


1836년 10월에 푸시킨은 장편소설 '대위의 딸'을 완성해 자신이 발간한 ‘동시대인’이라는 뜻의 '소브레멘니크' 문학잡지에 발표했다. 이 잡지는 당시의 보수적인 잡지에 대항하여 문단에 새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하여 만든 계간지로, 창간지에는 푸시킨의 '대위의 딸' 외에 고골의 '코', 주콥스키와 레르몬도프의 시가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5월23일에 네 번째 아이(딸 나타샤)를 낳은 아내 나탈리야와 젊은 근위장교 단테스의 염문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서 소문이 났다. 연회에서 사람들은 옹기종기 수군거렸다.

프랑스 태생의 귀화인 단테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 돋보이는 네델란드 공사 헤케른 남작의 양자로서 나탈리야에게 공공연히 구애하였고, 허영심과 바람기 가득한 나탈리야는 단테스와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1836년 11월 14일에 푸시킨은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편’이라고 적힌 익명의 편지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의 몇몇 친구들도 이중봉투에 든 이중봉투에 든 익명의 편지를 우편으로 받았는데, 그 내용은 ‘푸시킨이 나탈리야에게 버림받았으니 푸시킨에게 이를 전달하라’는 것이었다.

푸시킨은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편지의 발신자가 단테스의 양아버지인 네델란드 공사 헤케른임을 확인한 푸시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하지만 결투 신청 후 일주일 뒤인 11월21일에 단테스가 푸시킨의 처형인 예카테리나 곤차로바와 약혼하여 결투는 무산되었다.

11월23일에 푸시킨은 황실과 가까운 시인 주콥스키의 주선으로 니콜라이 1세를 알현했다. 황제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자신이 잠재우겠다고 말하면서 푸시킨은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말했다.

1837년 1월 10일 단테스는 아내 나탈리야의 언니인 예카테리나 곤차로바와 결혼하였다. 푸시킨은 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호색한 단테스는 예카테리나와 결혼 후 며칠 지나서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에게 또 치근댔다. 바람기 있는 아내 나탈리야는 단테스와 밀회를 했다.

푸시킨은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그에겐 단테스와의 결투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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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동상(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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