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세계여행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1) 푸시킨의 '황금수탉'

김세곤 2020. 3. 9. 11:58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1) 푸시킨의 '황금수탉'

승인 2020-03-09 1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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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833년 가을에 볼지노에서 '스페이드의 여왕' 등을 집필한 푸시킨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그해 12월에 푸시킨은 니콜라이 1세의 궁정 시종보로 임명되었다. 황제는 푸시킨에게 궁정 행사에 참석해야 할 의무를 지운 것이다. 이 조치는 어느 면에서는 미모인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가 궁정 행사에 참석하기를 바라는 니콜라이 1세의 속셈이 작용했다.

아내 나탈리야는 아기를 둘이나 낳았어도 러시아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문에 취하여 경박하게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바빴고, 궁정 무도회에서 춤추는 것을 즐겼다. 이러다 보니 나탈리야와 황제가 불륜관계라는 흉측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궁정에서의 연회는 나탈리야에게는 즐거움이었지만 푸시킨에게는 고통이었다. 마지못해 방만한 삶을 이어가야 했던 푸시킨에게는 적은 수입(연봉 5000불)으론 견딜 수 없어 부채는 자꾸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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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 초상화. 사진=김세곤 제공

1834년 6월25일에 푸시킨은 궁정 시종보를 그만둔다는 사직서를 냈다. 니콜라이 1세는 사직은 만류하진 않았으나, 사직하는 경우에는 황제와 푸시킨의 관계는 끝장이라는 전갈을 푸시킨에게 보냈다. 사태는 험악했다. 이러자 주콥스키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푸시킨에게 사직 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궁정의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7월4일에 푸시킨은 사직을 철회했다.

이후 니콜라이1세의 측근들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즉 자유의 시인이자, 데카브리스트의 벗이요, 대중의 인기가 높은 푸시킨은 전제정치에 암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푸시킨 저 · 이동현 옮김, 에브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 / 스페이드의 여왕, 동서문화사, 2012, p 416-420)

1834년 가을에 푸시킨은 볼지노로 가서 일련의 소유지 경영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서사시 '황금 수탉'을 지었다. 이 시의 줄거리는 이렇다.

황제 다돈은 이웃 나라를 공격하여 영토를 넓힌 전사였다. 하지만 그가 늙자 이웃 나라는 영토를 침범하여 그는 잠도 이루지 못하고 불안하게 살았다. 그는 현자이자 점성가를 고문으로 모셔왔다. 현자는 황제 앞에 서서 황금수탉을 내어놓으면서 수탉을 지붕 꼬쟁이에 꽂아 놓으라고 한다. 황제는 수탉이 울면서 방향을 틀면 그곳으로 군대를 보냈다. 그러자 이웃 나라는 싸울 엄두를 못 냈다.

이리하여 여러 해 동안 나라가 평안했는데 어느 날 황금수탉이 크게 울었다. 황제는 곧바로 큰아들과 군대를 보냈다. 8일 후에 닭이 다시 울었다. 황제는 다시 작은아들을 보냈다. 그런데 8일이 지나자 닭이 또 울었다. 이번에는 황제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며칠을 행군하여 좁은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그곳엔 두 아들이 서로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황제와 군사들은 모두 통곡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천막이 열리면서 샤마한의 공주가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황제는 죽은 아들들도 잊고 그녀의 미모와 유혹에 빠져 일주일간 향연을 즐긴다.

마침내 황제는 젊은 공주를 데리고 궁전으로 돌아온다. 성문 가까이에서 백성들은 떠들썩하게 황제를 맞았는데, 갑자기 군중 속에서 현자가 나타나 다짜고짜로 공주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한다. 황제는 어이가 없어서 공주는 안되고 그대신 황금이나 권력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자는 공주만 달라고 했다. 화난 황제는 현자를 황봉으로 내리쳐서 즉사시킨다. 이러자 공주는 히히히 하고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황제가 성안으로 들어가자 이본에는 황금수탉이 날아와 수레에 있는 황제의 정수리에 앉더니 황제의 정수리를 쪼아버렸다.

시의 마지막이다.

“닭이 ... 정수리를 쪼더니 날아올랐네.
그리고 그때 수레에서 다돈이 떨어져
신음 한번 하더니 죽어버렸네
그러자 공주는 사라졌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는 꾸민 것이나, 그 안에는 암시가 들어있으니!
우리 착한 청년들에게 주는 교훈이라.”

이 시는 황제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라는 이유로 검열을 받았다. 이 시는 어찌 보면 니콜라이 1세는 황제, 푸시킨은 현자,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는 공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몇 군데가 수정 · 첨삭되었다. 예를 들면 검열관은 맨 마지막의 “우리 착한 청년들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구절을 첨가했다.

'황금수탉'은 벨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림스키코르사코프 가 작곡하여 1907년에 초연되었다. 오페라에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하들이 우왕좌왕하고 황제는 사먀한 공주에게 유혹당하며, 현자와 황금수탉이 황제를 파멸시키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다. (푸슈킨 지음 · 최선 옮김, 푸슈킨 선집, 민음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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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키의 초상화.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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