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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0) 푸시킨의 '스페이드의 여왕'

김세곤 2020. 3. 2. 13:36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30) 푸시킨의 '스페이드의 여왕'

승인 2020-03-02 12: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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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러시아 사람들은 푸시킨을 ‘러시아의 봄이자 아침’이라고 칭송한다. 그는 근대문학과 근대 러시아어를 확립한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이고, 국민 시인이다. 푸시킨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언어로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여 높은 국민적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문학을 국민 것으로 만들었다.(푸시킨 저 · 이동현 옮김, 에브게니 오네긴/ 대위의 딸 / 스페이드의 여왕, 동서문화사, 2012, p 407)

1833년 10~11월에 푸시킨은 볼지노에서 머문다. 1830년 이후 두 번째였다. 이곳에서 그는 서사시 '청동의 기사', '안젤로'와 단편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을 집필했다.

'청동의 기사-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18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홍수 때 약혼녀를 바다로 떠내려 보낸 하급관리 오브게닌이 청동 기마상 앞에서 표트르 대제를 원망하다가 비참하게 죽는다는 서사시이다. 그런데 이 시는 검열에 걸려서 발표되지 못하다가 황제의 신임을 받은 시인 주콥스키(1783~1852)가 고쳐서 푸시킨 사망 후인 1841년에야 발표되었다.

1834년에 출간된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최고 소설로 평가받는 낭만주의적 환상소설이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감추어져 있는 불길함’을 의미하는 카드인데, 단 3번의 카드 노름으로 횡재하겠다는 돈에 집착하는 젊은 장교 게르만의 욕망과 강박관념을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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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의 여왕 카드. 사진=김세곤 제공


러시아에 귀화한 독일인의 아들인 게르만은 절제와 금욕으로 입신출세를 꿈꾼 청년 장교이다. 그는 포커판에서 노름하는 일이 한 번도 없다. 그러던 차에 늙은 백작 부인이 포커에서 반드시 이기는 비법을 알고 있다는 소식을 포커판에서 듣게 된다.

그 백작부인은 변덕이 심하고 인색하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데려온 양녀 리자베타를 마구 구박하고, 리자베타는 신세를 한탄한다.

한편 게르만은 백작부인 집을 알아내고, 리자베타에게 거짓 사랑으로 접근하여 백작부인 집 진입에 성공한다. 그는 백작부인에게 다짜고짜로 카드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침입자를 만난 백작부인은 거절한다. 그러자 게르만은 권총을 빼들고 죽인다고 협박하고, 백작부인은 그만 죽는다.

당황한 게르만은 리자베타에게 달려가서 빠져나갈 통로를 알려달라고 한다. 게르만에게 속은 것을 안 리자베타는 비통해하면서 비밀통로를 알려준다.

이후 게르만은 백작부인 영결식을 갔다. 관 앞에서 추모를 하는데 백작부인이 눈을 깜박거린 것이다. 놀란 게르만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가 뒤로 넘어졌다. 사람들은 그가 백작부인의 사생아라고 소곤댔다.

그 날 새벽에 하얀 소복을 입은 백작부인이 게르만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게르만에게 카드의 비밀을 "3·7·에이스”라고 알려주면서 이후론 평생 노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카드의 비밀을 안 게르만은 당장 모스크바의 도박장으로 달려갔다. 첫날 그는 3을 펴고 이겼다. 둘째 날엔 7을 쥐자 또 이겼다. 셋째 날 그는 전 재산을 걸었다. 포커판에는 퀸과 에이스가 놓였다. 게르만은 에이스를 잡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펴진 것은 에이스가 아니라 '스페이드의 여왕'이었다. 더구나 스페이드 여왕은 게르만에게 윙크하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와 닮았다고 느꼈다. ‘백작부인!’. 그는 공포에 휩싸여 소리를 질렀다.

결국 게르만은 미쳐버렸다. 그는 오부호프 정신 병원 17호실에 앉아서 무엇을 물어보아도, 그저 "3, 7, 에이스! 3, 7, 퀸!"하고 끊임없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소설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빠른 전개, 그리고 긴장감은 단번에 소설을 읽게 만든다. 더구나 단 한 번에 횡재하겠다는 욕망에 가득 찬 게르만이 정신병동에 수용되는 결말은 물욕에 대하여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은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푸시킨의 게르만이 모델이었다. (위 책, p 428-429)

한편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3막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대본은 푸시킨의 소설을 기초로 동생 모데스트 차이콥스키가 각색하였다. 오페라는 1890년 12월19일에 상트페테르스부르크 황실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902년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오스트리아 빈 주립 오페라에서 지휘하였고, 1910년에는 유명한 오페라 극장 대부분이 상연했다.

1948년에 영국 감독 소롤드 디킨슨은 푸시킨의 소설을 각색하여 '스페이드 여왕' 영화를 만들었다. 2019년엔 차이콥스키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영화도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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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영화 '스페이드의 여왕'의 한 장면.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