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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9) 푸시킨의 '대위의 딸'

김세곤 2020. 2. 24. 18:16



[김세곤의 세계문화기행] 예술과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29) 푸시킨의 '대위의 딸'

승인 2020-02-24 16: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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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831년 7월22일에 푸시킨(1799∼1837)은 다시 외무성 10등 문관으로 근무하였다. 극비 보관문서의 열람도 허용되었다. 1832년부터 푸시킨은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푸가초프(Pugachev) 반란을 진압한 수보로프(Suvorov)장군의 전기(傳記)를 연구한다는 구실로 그때까지 극비에 묻혀 있던 푸가초프 반란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어서 1833년 8월18일부터 9월30일까지 두 달간 푸가조프의 반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볼가강 유역과 남부 우랄 지역의 카잔과 오렌부르크를 방문했다. 이리하여 푸시킨은 1833년 11월에 '푸가초프 반란사'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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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 초상화. 사진=김세곤 제공


‘푸가초프의 반란’은 예카테리나 여제(재위 1762-1796)시대인 1773∼1775년에 푸가초프가 주동이 되어 일어난 농민반란이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러시아를 남부와 서부의 영토를 확장했고, 새로 획득한 영토는 귀족들에게 주어 농노제를 더욱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착취당하는 농노와 농민, 소수민족들은 푸가초프 반란으로 폭발했다.

푸가초프는 돈(Don) 지역 하층 카자크(변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역(軍役)을 하는 자치적 군사공동체, ‘코사크’라고도 부른다.)출신으로 몇 번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탈주한 도망병이었다. 그는 1772년 11월에 우랄 카자크와 농민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이 표트르 3세라고 주장했다. 많은 농민들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농노를 해방하려는 남편 표트르 3세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었다.

처음에 카자크 들로 시작된 반란군에는 농노, 국가농민, 광산과 공장 농노, 도시빈민, 구교도 그리고 바슈키르, 키르기스, 타타르인 등 소수민족들이 재빨리 합류하였다.

세력을 규합한 푸가초프 반란군은 오렌부르크를 점령하고, 카잔, 아스타라한 등 러시아 동부의 많은 지역을 장악했다. 이들은 흉폭 · 잔인했다. 지주와 부자들을 약탈하고 매질하고 살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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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동부 유럽 지도 (러시아 동남부 지명에 돈 카자크, 카잔, 차리친, 아스트라한이 적혀 있다. 사진=김세곤 제공


1774년 1월에는 3만 명에 이르는 반란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에 놀란 여제(女帝)는 터키와 전쟁을 지휘하던 수보로프 장군을 급히 불러들였다. 1774년 여름에 정부군은 푸가초프의 군대를 볼가강 하류 차리친(스탈린그라드, 지금은 볼고그라드) 근처에서 반란군을 괴멸시켰고, 푸가초프는 우랄 지역으로 도망쳤다. 1774년 말에 그의 부하들은 그를 정부군에 넘겨주었다. 모스크바로 압송된 푸가초프는 1775년 1월 붉은 광장에서 참수당하고 사지가 절단되어 모스크바 곳곳에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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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푸가초프. 사진=김세곤 제공

한편 1833년 말에 푸시킨은 1833년에 푸가초프 반란 관련 소설 '대위의 딸'의 집필에 들어가 1836년10월19일에 자신이 발간한 문학 잡지 소브레멘니크('동시대인'이라는 뜻)지에 발표했다.

이 소설은 1773년 푸가초프 반란의 소용돌이에 빠진 젊은 장교 그리뇨프가 자식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화를 이야기하는 수기(手記)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여주인공 마샤, 반란군 두목 푸가초프, 벨로고르스크 요새 지휘관인 마샤의 아버지 미로노프 대위, 그리고 장교 시바브린 등이다.

17세의 그리뇨프는 오렌부르크에서 40km 떨어진 벨로고르스크 요새에 소위로 부임한다. 그는 충실한 늙은 종 사벨리치와 함께 요새로 가는 도중에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만난 농민이 구해 주었다. 그 농민이 바로 푸가초프였다. 그리뇨프는 그의 남루한 옷차림에 동정을 느껴 토끼 가죽 외투를 주었다.

벨로고르스크에 도착한 그리뇨프는 미노로프 대위 일가와 친교하고 외동딸인 마샤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푸가초프 반란군은 요새를 습격해 미노로프 부부와 장교들을 살해한다. 그런데 푸가초프는 외투를 받은 인연으로 그리뇨프를 살려주었고, 마샤는 정교회 신부(神父)의 집에 몸을 숨겼다.

한편 그리뇨프는 요새를 탈출하여 진압군으로 출정하는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요새 지휘관이 된 배반자 시바브린이 마샤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뇨프는 마샤를 구출하기 위해 홀로 요새로 뛰어들지만 포로가 된다. 푸가초프 앞에 끌려간 그리뇨프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푸가초프는 마샤를 구해 주며 연회를 베푼다.

드디어 푸가초프의 반란이 진압되고 그리뇨프와 마샤는 함께 지낸다. 그런데 그리뇨프는 푸가초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처형당할 처지가 된다. 반란죄로 체포된 시바브린이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것이다.

이러자 마샤는 그리뇨프의 구명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의 ‘황제의 마을’로 간다. 마샤는 황궁 근처의 공원에서 한 귀부인을 만나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귀부인이 바로 여제였다. 다음날 마샤를 만난 여제는 사면령을 내린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1774년 말에 특사령에 의해 석방된 그리뇨프는 푸가초프 처형 현장에 있었는데, 푸가초프는 군중 속에서 그를 알아보고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한편 율 브리너가 주연인 코사크 영화 대장 부리바(1963년 개봉)의 원작 소설 타라스 불리바(1835년 작품)를 쓴 고골(1809∼1852)은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가장 뛰어난 러시아 산문 문학”이자,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실보다 더 진실한”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톨스토이(1828∼1910)는 러시아 역사 속의 가족사를 그린 대위의 딸을 모델 삼아 '전쟁과 평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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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위의 딸' 삽화. 사진=김세곤 제공


여행칼럼니스트/호남역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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