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주나라 무왕(武王), 목야(牧野)에서 주왕(紂王)과 결전 앞두고 군사들에게 “암탉이 울면…” 훈시
-발가벗은 젊은 남녀 뛰놀게 하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향락을 즐기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숯불 타오르는 구덩이 위에 기름 바른 구리 기둥들 얹고 그 위를 맨발로 걷게 하는 포락지형까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남녀평등에 크게 어긋나고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남성이 절대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語源)을 살펴보았더니 3천1백년이나 된 오래된 말이다.
BC 1046년에 중국 주나라 제후 무왕(武王)은 목야(牧野)에서 은나라의 폭군 주왕(紂王)과의 결전을 앞두고 군사들에게 이렇게 훈시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였다. 지금 주왕은 오직 한 여인 즉 달기의 말만 듣고 있다.” (『서경』 ‘목서(牧誓)’)
무왕의 연설은 은유적이다. 수탉만이 새벽에 운다. 새벽에 암탉이 우는 것은 자연법칙에 반한다. 그런데 은나라는 주왕의 애첩 달기(妲己) 즉 암탉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러니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면 망조가 든다. ‘순천자(順天子)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子)는 망(亡)한다’는 말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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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젊은 남녀를 뛰놀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향락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묘사한 그림.
한편 은나라 주왕은 원래 자질이 뛰어 났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행동도 민첩했다. 체력도 좋아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총명함은 주변의 충고를 거절하게 만들었고, 지혜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에 충분했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주왕이 유소(有蘇)를 정벌했을 때 유소는 주왕에게 달기를 바쳤다. 주왕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달기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이후 주왕은 아예 정사를 돌보지 않고 달기와 쾌락에 빠졌다. 달기는 주왕을 사로잡기 위해 복숭아꽃 꽃잎을 짜서 만든 ‘연지(燕脂)’를 뺨에 발랐고, 그녀 방에는 음란한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달기가 주왕의 총애를 받자 강왕후는 그녀를 질투했다. 어느 날 자객이 주왕을 습격했다. 달기는 이 사건을 강왕후에게 덮어씌웠고, 강왕후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주왕은 녹대(鹿臺)라는 누각을 만들어 재물을 가득 쌓았다. 별궁 정원 앞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즐비하게 늘어세운 뒤 그 사이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젊은 남녀를 뛰놀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향락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다.
달기는 인사에도 관여하였다. 주왕은 달기의 마음에 드는 신하만 중용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간신들로 가득 찼다. 미자(微子) · 기자(箕子) · 비간(比干) 같은 충신들의 직언을 싫어하여 그들을 내쳤다. 그리하여 미자는 나라를 떠났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죽임을 당했다.
주왕의 숙부인 비간은 사흘 동안이나 주왕에게 간언하였는데 주왕은 “옛 성현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네 심장에는 과연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며 비간을 해부하여 그 심장을 꺼내보았다. 『열녀전』에는 ‘이 일 또한 달기를 기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고 적혀있다. 마치 살로메의 춤에 매혹된 계부 ‘헤롯’왕이 살로메를 기쁘게 하려고 세례 요한을 참수하고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살로메에게 선물로 주었듯이. 『신약성서』 마가복음 6장에 나온다.
특히 참혹한 것은 주왕은 임신한 비간의 아내의 배를 갈라 태를 보는 악행도 서슴지 않은 점이다.
아울러 주왕은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실시했다. 이 형벌은 이글이글 숯불이 타오르는 구덩이 위에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즐비하게 얹은 다음, 그 위를 맨발로 걷게 하여 건너가게 한 처형 방법이었다.
어렸을 때 본 홍콩과 합작 영화 <달기>가 생각난다. 이글거리는 불 위를 걷는 죄수들. 구리 기둥에서 미끄러지면 떨어져 불에 타 죽고,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면 손과 발이 불에 타 뼈가 다 드러나는 아비규환의 지옥. 이 모습을 보고 주왕과 달기가 즐거워했으니.
마침내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징벌했다. 두 나라는 목야에서 전투를 벌였다. 주나라 군사는 4만5천명, 은나라는 70만 명이었다. 은나라는 훨씬 우세했지만 군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주로 노예와 가난한 자유민이어서 적개심이 있을 리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은나라 군사들은 무기를 거꾸로 들고 앞 다투어 투항했다. 폭군 주왕은 귀중한 보물을 감춰둔 녹대의 ‘선실(宣室)’에 불을 놓아 스스로 불타 죽었고, 요녀(妖女) 달기는 목을 매어 자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 역시 포사(褒姒)라는 여인 때문에 망했다. 이후에도 경국지색의 여인들은 중국 여러 나라와 영웅을 망하게 했다. 쫓겨난 폭군 연산군에게도 장녹수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