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경향신문 2014.1.29 김세곤 | 전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학장
경향신문 2014.1.29. 기고 .
[기고]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김세곤 | 전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학장
입력 : 2014.01.29 19:11 수정 : 2014.01.29 22:25
영화 <변호인>을 두 번 보았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대학생 진우를 ‘빨갱이’로 모는 비상식적인 일에 울분을 터뜨리는 송우석 변호사의 말에 필자가 겪은 차별 진정사건이 떠올랐다. 지난해 5월 감사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이 공무원 출신은 60세에 그만두게 하고 민간 출신은 60세가 넘어도 응모하여 3년간 근무하게 함은 차별입니다. 같은 공무원 출신 간에도 차별이 존재합니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이 공무원과 민간 출신 간에 차별적인 정년제도를 운영하고 이를 ‘관행’이라고 당연시하는 상황에서 감사원과 인권위는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진정서를 고용노동부에 이첩하였고 고용노동부는 다시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에 이송하였다. 너무 황당하였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의 부당한 처사를 시정해달라고 진정을 낸 것인데 사건을 다시 원인제공자에게 되돌려 보낸 것이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이 자신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인정할 리 만무했다.
“공무원, 민간인 또는 내부교직원이 지역대학장으로 임용된 경우 60세 이전에 모두 퇴직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출신이라 해서 임기상 차별을 두고 있지 않음. 다만 공무원 출신이라 하더라도 민간인과 동일하게 60세 이후 공모에 응모해 지역대학장으로 임용된 경우 임기를 보장하고 있음.”
동문서답, 사실 왜곡이었다. 60세가 넘은 지역대학장이 26명 중에 3명이나 있는데 ‘60세 이전에 모두 퇴직하고 있다’고 하고, 3년 임기도 보장하지 않고 60세에 사직처리하고서 60세 이후 다시 응모 가능하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인권위는 진정서 접수 5개월 만에 통지가 왔다. 답변은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민간 출신이든 공무원 출신이든 60세 이전에 임명되어 60세를 초과하여 근무하는 지역대학장은 없었으며, 60세 이후에 임명되는 경우는 동일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점 등에 비추어 기각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의 회신을 베낀 듯한 결정문에 절망감이 몰려왔다. ‘출신과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로 제목을 달아 진정서를 접수해놓고서 정작 공무원과 민간인 출신 간 차별은 아예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은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없이 연령을 이유로 퇴직과 해고 등에서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법 역시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정년 등에서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감사원, 고용노동부, 인권위 모두 헌법상 평등권에 기초한 이들 실정법을 애써 외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의지를 보였다. 그러려면 먼저 비정상적인 민원행정 관행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피진정인이 진정서를 처리하는 사례는 없어져야 한다. 공정한 민원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