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과거 응시, 김세곤 (칼럼니스트)
김일손의 과거 응시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윤근수의 『월정만필』에는 ‘김일손의 과거 응시’ 글이 실려 있다.
탁영(김일손)이 별시에 응시하였을 때 탁영의 두 형 준손(駿孫)과 기손(驥孫)도 탁영의 손을 빌린 덕택에 탁영과 함께 모두 초시에 합격하였다. 전시를 치르는 날, 탁영은 두 형의 책문을 대신 지어주고, 자기 것은 짓지 않았다. 형에게 장원을 양보하고 자기는 훗날 과거에 장원하려고 한 것이었다. 두 형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준손은 갑과 제1인이었다.
훗날 과거를 치를 때 전시(殿試)의 시관(試官)이 속으로 탁영의 문장인줄 알고서 그 사람됨을 꺼려 2인으로 밀어 두었기에 민첩(閔怗)이 제1인이 되었다. 김일손이 듣고서 성을 내며, “민첩이 어떤 사람이냐?”하였다.
이 글에서 전시(殿試)의 시관(試官)이 바로 무오사화의 수악(首惡) 이극돈이다. 김일손은 1486년(성종 17) 10월에 복시에 제1인으로 합격하고 (책문은 중흥책), 전시에 갑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9일(이극돈의 사초의 일에 대한 상소)에는 김일손이 2등으로 급제한 일이 나온다.
“ 병오년(1486년)에 신이 윤필상(尹弼商)·유지(柳輊)와 함께 시관이 되어 예조에 있는데, 일손이 거자(擧子)가 되었습니다. 신은 본래 일손이 문장에는 능하나 심술이 범람하다는 말을 듣고, 대작(代作)이 있을까 두려워 중장(中場)·종장(終場)의 제술을 모두 월대(月臺) 위에 두고 제술하게 했습니다. 고시하는 날이 되어 한 권의 잘 지은 것이 있었는데 말이 격식에 많이 맞지 않았습니다. 좌중이 능작(能作)이라 하여 1등을 주고자 하였으나 신은 홀로 말하기를, ‘과장의 제술은 정식(程式)이 있는데, 이 시권(詩卷)이 아무리 능작이라 할지라도 정식에 맞지 아니하니 1등에 두어서는 안 된다.’ 하였더니, 좌중에서 다 그렇게 여기어 마침내 2등에 두었습니다. 나는 사사로 좌중에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김일손의 제작일 것이다. 이 사람이 본시 격식에 구애받지 아니하니 마땅히 제재하여 중(中)에 가게 해야 할 것이다.’하였사온데, 이것이 김일손의 맨 처음 원망을 맺은 곳이었습니다.”
이렇듯 이극돈은 스스로 김일손과의 첫 악연을 1486년 과거 시험에서 자기가 2등으로 준 것을 상소문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