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과 무오사화

김일손, 1487년에 남효온과 함께 성담수를 만나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김세곤 2018. 7. 27. 09:46

김일손, 1487년에 남효온과 함께 성담수를 만나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탁영선생문집탁영선생연보를 읽는다.

 

1487(성종 18) 24

 

1월 홍문관 정자 및 춘추관 기사관이 되다.

417일 부인 우씨가 별세하다.

6월 부인을 청도의 나복산에 묻다.

8, 추강 남효온과 함께 파평 남곡의 문두 성담수 선생을 방문하여 창수하며 10일간 종유하다.

9, 노모 봉양을 위해 진주목학 교수를 청하여 나가다.

 

1486년에 문과에 급제한 김일손은 1487417일에 부인 우씨가 별세하는 아픔을 맞았다. 부인을 청도의 나복산에 묻고서, 8월에 김일손은 추강 남효온과 함께 파평 남곡의 문두 성담수(成聃壽 생몰년 미상)를 방문했다.

 

성담수는 성삼문의 6촌 동생으로 1456(세조 2) 성삼문 ·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자, 그의 아버지 성희도 친족이라는 이유로 연좌되어 혹독한 국문을 받고 김해에 안치되었다. 성희는 3년 뒤에 풀려나서 공주에 돌아왔으나 충분(忠憤)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일에 충격을 받아 성담수는 벼슬을 단념하고 선영이 있는 경기도 파주의 문두리에 은거하였다.

 

 

성담수는 1458년 봄에 김시습이 주관하는 공주 동학사에 열린 단종 초혼제에 참가했다. 이 제사에는 단종을 몰래 장사지낸 엄흥도가 단종이 입던 옷을 가지고 달려 왔고, 영천에 낙향한 조상치는 단종의 의관과 궤장을 가지고 왔다. 함안의 조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죽은 우의정 정분의 아들 정지산, 전 병조판서 박계손, 전 참판 이축, 전 동지중추부사 송간, 전 교리 성희 및 승려 명선 · 월잠 · 운파도 모였다. 이들은 과일과 어물(魚物) 등을 갖추어 단종 제사를 지냈다. 축문은 조상치가 지었고, 김시습은 제문을 낭독하고서 오열했다.

 

이후 성담수는 파주에서 비바람도 가리지 못할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돗자리도 없이 흙바닥에서 밤을 지내고 날이 새면 낚시로 소일하고 있었다. 김일손은 남효온과 함께 성담수 집에 갔는데 10일간이나 머물렀다.

 

하루는 성담수는 술병을 차고 강으로 나갔는데 기분이 좋았던지 7언 절구 시 한수를 지었다.

 

 

낚싯대 들고 강가에 나가 하루해를 보내다가

창파에 발 담그고 곤히 한숨 잠을 잤네.

백구와 함께 바다 멀리 나는 꿈을 꾸었건만

깨고 보니 이 몸은 석양 아래 누워 있네.

 

把竿終日趁江邊 파간종일진강변

垂足滄浪困一眠 수족창랑곤일면

夢與白鷗飛海外 몽여백구비해외

覺來身在夕陽天 각래신재석양천

 

 

그러자 김일손은 운에 맞추어 화답했다. 압운은 1,2,4구의 변, , 천이다.

 

갈매기 · 해오라기가 세상 일 잊고 양쪽에서 호위하며

모래 자리에 돌베개로 한가로이 잠이 들었네.

한바탕 꿈속에서 선생이 어디서 노셨는지 알 것 같지만

지금은 맑은 바람 부는(淸風) 북해의 하늘 아래에 있을 뿐 1)

 

鷗鷺忘機護兩邊 구로망기호양변

茵沙枕石共閑眠 인사침석공한면

知君一夢遊何處 지군일몽유하처

只在淸風北海天 지재청풍북해천

 

1) 청풍은 맑은 바람이란 의미 말고도 청고한 풍격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 시에서는 문두 성담수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