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 15세에 생육신 이맹전과 만나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김일손, 15세에 생육신 이맹전과 만나다.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김일손(1464∽1498)은 1471년(성종 2) 8세 때 용인 외가에 살며 소학을 배웠고, 1478년(성종 9) 15세 때는 2월에 반궁(성균관)에 입학하였다. 3월에는 호서 단양에서 단양 우씨 참판 극관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부인 우씨는 주역을 제대로 풀이하여 ‘역동선생(易東先生 : 동방의 주역선생)’이라고 불린 고려 말의 학자 우탁(禹倬 1262∼1342) 집안이었다.
8월에는 청도로 가는 도중 선산에서 어은 정중건, 경은(耕隱) 이맹전 선생을 뵙고 시를 주고받았다. 1)
이맹전(李孟專·1392~1480)은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생육신(生六臣) 중 한 사람이다. 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평생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거짓행세를 하며 숨었던 노(老)선비였다.
이맹전이 김일손을 만난 것은 그의 나이 87세, 세상 떠나기 2년 전이었다. 이맹전은 반가웠다. 김일손에게 시를 지어주었다.
집 언저리 맑은 옆 맑은 시냇물(淸澗) 찾아가는 꿈 많이 꾸었지 2)
꿈에서 깨어 등 밝히면 내 집안 그대롤세.
슬프다 음성과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니
다만 늙고 병듦이 날로 더해지는 나날이라네.
김일손은 이맹전에게 「경은 이선생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드리다 – 무술년 (1478) 」 시를 바쳤다. 경은은 이맹전의 호다.
선생께선 숨어 살며 오랫동안 청맹과니 하신 뜻을
소자가 어찌 알아 뜻을 같이하오리까마는
밤마다 두견새(자규) 울어울어 그칠 줄을 모르니 3)
구의산 산 색이 달빛 속에 아련하오이다.
한편 김일손은 선산에서 외조부인 어은 정중건도 만났다. 정중건은 1453년 계유정난 때 집현전 전한으로 있다가 비안(比安)현감을 자청하고 나갔는데, 곧 사직하고 이맹전과 함께 은둔했다.
김일손을 만나자마자 정중건은 시를 지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노병으로 지낸 세월 놀랍게도 적잖아서
누가 이 누추한 집 다시 찾으랴 여겼더니
홀연히 책상위에 바람과 천둥이 동하는 듯
솜씨 따라 의연한데 달과 이슬마저 더했구려.
김일손은 「이맹전 ·정중건 선생에게 삼가 화답하다」란 시를 지었다. 두 분에 대한 감사였다.
기러기 쌍으로 날아 주살 피함 장한데다
시내의 남쪽과 시내의 북쪽이 처사의 집 되셨구려.
객이 왔다고 우하(虞夏)의 일 말하지 말고 4)
시끄러운 세상일로 귀를 더럽히지는 마세요.
생육신 이맹전과 외조부 정중건을 만난 김일손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하여 생각했으리라. 권력을 위해 동생(안평 · 금성대군)들과 조카(단종)를 죽여도 되는가? 단종은 명색이 임금이었는데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몰라야하는가? 단종의 생모이자 세조의 형수인 현덕왕후마저 능이 파헤쳐져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화두가 감수성이 한창인 15세 김일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으리라. 5)
1) 김일손이 이맹전을 만난 것은 우씨 부인과 함께 청도 본가로 신행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 『탁영선생문집』, p 394-395)
한편 이맹전은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 원호·김시습·조려·남효온·성담수와 함께 생육신으로 제향 되었다.
2) 맑은 시냇물은 시의 내용으로 보아 단종이 유폐되었던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암시하는 듯하다.
3) 자규는 단종이 영월 관풍헌 매죽루에서 읊은 자규사를 연상케 한다.
단종이 읊은 ‘자규사(子規詞)’는 이렇다.
달 밝은 밤 귀촉도 슬피 울 제
수심에 젖어 다락에 기대섰네.
네가 슬피 우니 듣는 내가 괴롭구나.
네가 울지 않으면 내 시름도 없으련만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부디 오르지 마소
月白夜蜀魂啾
含愁情依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愼莫登春三月子規樓
4) 우하의 일 : 중국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한 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세조는 형식적으로는 단종으로부터 선위 받았다.
5) 한편 1478년 4월15일에 25세의 성균관 유생 남효온(1454∽1492)은 소릉(현덕왕후의 능) 복위 상소를 올렸다. 김일손은 그해 9월에 서울로 돌아가 성균관에 들어갔다. (탁영선생 연보 p 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