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 , 공무원 연금 잡지 2018년 5월호
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
김세곤 (경기 수원시 장안구 만석로)
3 월23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양국 간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며, 양국이 미래 지향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가길 희망한다.”고 밝히고 베트남 국부(國父) 호치민(胡志明 1890∼1969) 묘소와 처소를 찾았다.
2015년에 처음으로 베트남을 여행했다. 호치민을 갔는데 1975년에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월남 수도 사이공이 호치민으로 명칭이 바뀐 줄도 몰랐다. 그런데 호치민에서 전쟁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서 베트남과 호치민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6년 4월에 하노이를 갔다. 바딘 광장에서 호치민 영묘를 보고 주석궁의 호치민 처소를 구경했다. 호치민이 1945년부터 1958년까지 살았던 집부터 보았는데 프랑스 통치 시 전기 수리공이 살았다. 집은 침실과 식당, 집무실뿐이었다. 집무실 책상 윗벽에는 호치민이 존경한 마르크스와 레닌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3칸 자리 집을 지나 3-4분 걸어가니 2층 목조 건물이 나온다. 이 집이 바로 호치민이 1959년부터 1969년 9월에 별세할 때까지 살았던 집 ‘냐 산(NHA-SAN)’이다. ‘냐 산‘은 베트남 산악지대에 있는 2층 집으로 땅에 1.5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로 집을 짓는다. 아래층은 비워두고 위층은 주거공간이다.
냐 산 아래층에는 나무 의자가 딸린 탁자가 놓여 있다. 이곳이 베트남 정치국원들이 미국 국방부와 대적한 전쟁지휘소이다. 한 구석에는 구형 전화기가 두 대 놓여 있다.
철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국가 원수가 사는 집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렵게 집무실과 침실뿐이다. 집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책장이 있고, 책상에는 타자기 한 대와 전기스탠드가 놓여있다.
침실에는 작은 침대와 책상 하나가 있다. 침대 위에는 전기스탠드와 시계, 침대 아래는 선풍기가 있고, 책상에는 모자와 라디오가 놓여 있다.
그런데 침실에는 화장실이 안 보인다. 호치민이 1층에다 화장실을 만들라고 했단다.
절제와 검소의 냄새가 확 풍긴다. 하기야 1969년 9월2일에 호치민이 별세했을 때 그가 남긴 유산은 침대 · 책상 · 의자, 카키 옷 두 벌, 고무샌들 한 켤레, 라디오와 골동품 시계 하나, 타자기 한 대 뿐이었다. 언젠가 호치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치는 부패보다 더 나쁘다.”
그런데 호치민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 그것은 중국 · 프랑스 · 미국과 대항하여 베트남 통일혁명의 대업 완수를 위하여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함이었다. 1930-40년 대 독립투쟁시절에 산악지대 냐 산에서 지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자신을 채찍질하며 오직 조국 통일을 향한 마지막 일념(一念)을 불태우기 위함이었다.
2017년 3월에 하노이를 두 번째 방문했다. 호치민 박물관을 구경하고자 함이었다. 1930년대 초에 월북한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모스크바 연수 동기 호치민에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주었는데 이 책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는 글을 『박헌영 평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단체여행 인솔자가 스케줄을 바꾸는 바람에 박물관 내부관람을 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사진 몇 장만 찍고 말았다.
윌리엄 듀이커는 『호치민 평전』에서 호치민을 ‘반은 레닌이고 반은 간디’라고 평했다. 호치민! 그는 진실로 베트남의 국부(國父)이다. 마치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처럼. 우리나라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