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 전라도 천년 , 1부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역사 여행 - 전라도 천년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목 차
I. 전라도 천년
1. 전라도란 명칭
2 호남학 전시관
II. 전라도 천년 역사 여행
1. 삼별초의 대몽 항쟁(1270년)
2. 이성계의 황산대첩(1380년)
3. 호남사림과 4대 사화
4. 1589년 기축옥사(정여립 사건)
5. 임진왜란 7년 전쟁(1592-1598)
6. 정약용의 강진 유배(1801-1818년)
7. 동학농민혁명(1894년)
8. 한말의병과 개화 (1895-1909년)
9. 일제강점기 (1910∽1945)
10.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III.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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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전라도 천년
1. ‘전라도’란 명칭
2018년은 ‘전라도(全羅道)’란 이름이 붙여진지 천년이 되는 해이다. 고려 성종 14년(996년)에 전주(全州)ㆍ영주(瀛州)ㆍ순주(淳州)ㆍ마주(馬州)등의 주현을 강남도(江南道)라 하고, 나주(羅州)ㆍ광주(光州)ㆍ정주(靜州)ㆍ승주(昇州)ㆍ패주(貝州)ㆍ담주(潭州)ㆍ낭주(郞州)를 해양도(海陽道)라 하였다. 그런데 1018년(현종 9년)에 고려 현종은 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전주 지역 강남도와 나주 지역 해양도를 합치고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 ‘전라도’라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33권)
2. 광주 농성역 ‘호남학 전시관’의 편액
광주광역시 도시철도 농성역에는 ‘호남학 전시관’이 있다. 농성역 입구 벽에는 ‘한국역사 지켜 온 지혜롭고 의로운 땅’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호남은 한국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 새로운 이정표 세운 걸출한 인물들을 낳았습니다. 그 인물들은 일찍이 한반도를 동북아의 중심이자 선진문물의 전파지로 자리매김했고 깊은 사상과 혜안으로 미망의 역사를 밝혀왔습니다.
또한 호남 인물들은 국난극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외세에 맞서 민족 지존을 지키고 독재의 폭력에 대항해 민주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뜨거운 저항과 실천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호남정신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렇다. 호남은 ‘한국역사 지켜온 지혜롭고 의로운 땅’이다. 호남의 지혜는 왕인 · 장보고에 이어 송희경· 최부 · 강항으로 이어지며 중국과 일본에 이름을 알렸고, 기대승·김인후·이항의 도학과 유형원 · 위백규 · 하백원 · 정약용의 실학, 기정진의 유리론(唯理論)은 호남이 학문의 고장임을 증명했다. 아울러 송흠 · 박수량 · 박상은 청백리로, 선조 때 14년간 내리 정승을 한 박순은 겸손으로 이름 높았다.
아울러 호남은 의향(義鄕)이다. 고경명 3부자(父子) · 김천일 부자 · 최경회 3형제와 박광전 부자의 임진왜란 의병과 의기 논개의 순절, ‘보국안민’의 동학농민혁명과 녹두장군 전봉준, 기삼연 · 김태원 · 고광순의 한말 의병, 나철의 대종교, 매천 황현의 순국, 1929년 광주학생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호남이 의로운 땅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가 말해주듯이 호남 사람들은 구국(救國)의 길을 걸었다. 이런 의로움은 오늘날까지 호남인의 피 속에 꿈틀대고 있다.
또한 호남은 ‘신명과 끼로 한국 예술의 원형을 빚은 땅’이다. 호남은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고장이며 남종화의 원류이다. 송순 · 정철의 가사문학과 윤선도의 시조, 임제 · 최경창 · 백광훈 · 매창의 시는 호남이 문학의 보고(寶庫)임을 입증했고, 그 맥(脈)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과 ‘나두야 간다.’ 박용철의 시문학파로, 맨부커상 수상자 한강으로 이어졌다. 한편 임방울의 ‘쑥대머리’,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일제 강점기에 ‘겨레의 노래’가 되었다.
II. 전라도 천년 역사 여행
전라도 천년에 할 일은 천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이로써 전라도의 정체성(正體性)과 자긍심을 찾을 수 있고 ‘법고창신(法古創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 천년 여행은 시간과 공간, 인물 (時 · 地 ·人) 여행이다. ‘천년의 시간 여행’은 10대 사건을 재조명하는 일이다.
1. 1270년 삼별초의 대몽 항쟁 – 진도, 제주도
배중손, 진도에서 항몽,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추대(용장산성), 3년간 저항. 1273년 제주도에서 김통정 자결.
2. 1380년 이성계의 황산대첩
o 왜구를 격퇴하다 –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황산대첩비
o 1388년 위화도 회군 – 1392년 조선 건국
o 1419년(세종 원년) 이종무, 대마도 정벌
- 송희경(1376∽1446) ‘노송당 일본행록’, 1420년(세종 2년)에 송희경은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감. (면앙 송순의 조상)
o 1446년 훈민정음 반포
o 1453년 계유정난 – 1455년 세조의 왕위 찬탈 – 1456년 사육신 사건 – 1457년 단종애사
* 선비들의 낙향 – 세조 왕의 찬탈 후 박상 아버지 박지흥, 충청도에서 광주의 처가로 낙향
3. 호남사림과 4대 사화 (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
가. 무오 · 갑자사화
금남(錦南) 최부 (1454 ∼ 1504), <표해록> 무오사화로 유배, 갑자사화로 참형당함 (김굉필의 순천 유배와 참형)
나. 기묘사화 (1519년)
o 도학정치를 꿈꾼 지치주의자 조광조(1482∼1519), 11월 26일 능주 (화순군 능주면 적려유허지)에 유배옴 – 12월20일에 사약을 받음, 절명 시.
- 눌재 박상 (1474∼1530)의 만시 – 신비 복위소 (순창 삼인대)
- 기묘사림: 화순 양팽손(1488-1545), 광양 최산두(1483∼1536 화순에 유배) 해남 유성춘(1495∼1522), 해남 윤구(1495∼1549 윤선도의 조상)
- 소쇄원의 양산보(1503∼1557) : 조광조의 제자로서 은거함.
* 허균(1569∼1618)의 『성옹지소록』
중종시절에는 호남 출신의 인재로서 드러난 자가 매우 많았다. 박상과 박우 형제ㆍ최산두ㆍ유성춘과 유희춘 형제ㆍ양팽손ㆍ나세찬ㆍ임형수ㆍ김인후ㆍ임억령ㆍ송순ㆍ 오겸 같은 사람은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이들이다. 그 후로도 박순ㆍ이항ㆍ양응정ㆍ기대승ㆍ고경명이 학문이나 문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다. 을사사화 (1545년), 정미사화(1547년)
o 하서 김인후(1510 ∼1560)
o 미암 유희춘 (1513∼1577 )
o 금호 임형수 o 석천 임억령
- 청백리: 삼마태수 송흠(1459∼1547)과 백비의 박수량(1491∼1554)
라. 선조 시대
o 고봉 기대승 (1527∼1572)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논쟁, 월봉서원
o 절개와 겸양의 재상, 박순 (1523∽1589)
o 송강 정철 (1536-1593) 가사문학의 대가, 서인의 영수 (송강정)
* 중종 · 선조시대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 : 면앙 송순, 백호 임제(1549∽1587), 송강 정철, 옥봉 백광훈, 고죽 최경창, 부안기생 이매창, 양곡 소세양 (익산 1486-1562)
( 2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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