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로와 사관 김일손 (2),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탁영로와 사관 김일손 (2)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무오사화는 25년간 재위하고 1494년에 승하한 성종(1457∼1494)의 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실록청 당상관인 이극돈은 사초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비행이 사관 김일손에 의해 기록된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그가 세조때 불경을 잘 외운 덕으로 전라도 관찰사가 된 것과, 세조 비였던 정희왕후 상(喪) 때 장흥의 관기를 가까이 한 일 등이었다.
이극돈은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김일손은 단칼에 거절했다. 이극돈은 자신의 비행이 실록에 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김일손이 사초에 실은 세조 때의 궁금비사(宮禁秘事 궁궐의 비밀스런 일)를 문제 삼고 유자광에게 알렸다. 유자광은 팔을 내두르며 말하기를, ‘이 어찌 머뭇거릴 일입니까.’ 하고, 즉시 세조 때의 훈구공신 노사신·윤필상·한치형을 설득하자 세 사람이 모두 따랐다.
1498년 7월1일에 유자광은 윤필상, 노사신, 우의정 한치형과 함께 차비문(差備門)에 나아가 도승지 신수근을 불러내어 귀에다 대고 한참 동안 말한 뒤에 이어서 연산군에게 비사(秘事)를 아뢰었다.
처음에 신수근이 도승지가 될 적에 대간과 시종이 ‘외척(신수근은 연산군의 매제임)은 이 권세를 얻을 조짐이다.’고 해서 강력히 불가함을 아뢰었으므로, 신수근이 원망을 품고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대간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무엇을 하겠느냐.’하였다.
잠시 뒤 의금부 경력 홍사호와 의금부 도사 신극성이 명령을 받고 경상도로 달려갔다. 7월11일에 연산군은 “김일손의 사초를 모두 대내로 들려오라”는 전교를 내렸다.
한편 홍사호와 신극성이 달려간 곳은 경상도 함양이었고 체포된 인물은 김일손이었다. 김일손은 1496년에 모친상을 당하여 청도에 있었는데 상복을 벗자 풍병을 앓아 함양에서 요양 중이었다. 김일손은 홍사호가 나타나자 “지금 내가 잡혀가는 것이 과연 사초에서 일어났다면 큰 옥이 일어날 것이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