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김일손

탁영로와 사관 김일손 (1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2017. 10. 9. 05:23

탁영로와 사관 김일손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탁영로(濯纓路)란 도로가 있다. 길이는 424m에 불과한 짧은 도로이지만, 이 도로는 무오사화의 희생자인 사관(史官)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호를 따서 이름 지어졌다.

 

탁영(濯纓)’은 김일손의 호()이다. 그러면 탁영은 무슨 뜻일까. 단순히 갓끈을 씻는다는 해석만으로는 알 수 없다.

 

탁영은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屈原 BC 343BC 278)이 지은 책 초사(楚辭)<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을 도와 정치 활동을 했으나, 간신의 참소로 호남성의 상수로 추방당했다. 쫓겨난 그는 상수의 연못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한 어부를 만났다. 어부는 굴원에게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자, 굴원은 온 세상이 모두가 흐려있는데 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하였고, 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이 술에 깨어 있다가 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거라오.’라고 답했다.

어부가 이 말을 듣고, ‘물결 흐르는 대로 살지, 어찌 고고하게 살다가 추방을 당하셨소?’하고 굴원에게 묻자, 굴원이 다시 말하기를 차라리 상수(湘水) 물가로 달려가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이 어찌 희디흰 순백(純白)으로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쓴단 말이오?’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노로 뱃전을 두드리며 떠나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으리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오.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굴원은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해 음력 55일에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

 

그런데 김일손은 세상이 흐림에도 불구하고 갓끈을 씻겠노라고 호를 탁영이라 지었다. ‘滄浪之水濁兮이어도 可以濯吾纓하겠노라고 다짐 한 것이다. 그러나 흐린 물에 갓끈을 씻으려 한 대가는 가혹했다. 도리어 그는 무오사화로 능치처사 당했던 것이다.

1498(연산군 4)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가장 먼저 일어난 사화이다. 士禍(사화)는 선비가 화를 입는다는 뜻이지만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사초(史草)로 인하여 일어났고 사관들이 화를 입었기 때문에 史禍(사화)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