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야(1) - 조선 통신사의 엇갈린 보고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임진왜란 전야 - 조선통신사의 엇갈린 보고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다. 조짐을 알았지만 대비하지 않았다. 1591년 3월, 선조는 일본을 다녀 온 조선통신사를 접견했다. 정사는 황윤길, 부사는 김성일, 종사관은 허성이었는데, 이들은 1590년 7월22일에 교토에 도착하여 11월7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1591년 1월에 귀국했다.
선조의 조선통신사 접견 기록은 1591년 3월1일자 선조수정실록에 나온다.
“부산으로 돌아와 정박하자 황윤길은 그간의 실정과 형세를 치계(馳啓)하면서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복명한 뒤에 상이 인견하고 물으니, 황윤길은 전일의 치계 내용과 같은 의견을 아뢰었고, 김성일은 아뢰기를,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 하였다.
선조가 물었다. "수길이 어떻게 생겼던가?" 황윤길이 아뢰기를,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 하였습니다.“
김성일은 아뢰기를,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 하였는데, 이는 김성일이 일본에 갔을 때 황윤길 등이 겁에 질려 체모를 잃은 것에 분개하여 말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한 것이었다.
당시 조헌이 화의(和議)를 극력 공격하면서 왜적이 기필코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황윤길의 말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서 모두가 ‘서인(西人)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요란시키는 것이다.’고 하면서 구별하여 배척하였으므로 조정에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선조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류성룡이 김성일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만일 병화가 있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하니, 김성일이 말하기를, "나도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될까 두려워 그것을 풀어주려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조정은 조선통신사의 엇갈린 보고로 논란이 분분했다. 당시는 서인의 영수 좌의정 정철이 세자 책봉문제로 선조의 분노를 사서 1591년 2월에 파직되었고 서인들은 세력을 잃었다. (정철은 나중에 강계로 귀양을 간다.) 삼정승(영의정 이산해 · 좌의정 류성룡 · 우의정 이양원) 모두 동인이었다.
당연히 대세는 부사 김성일의 의견 쪽이었다. 서장관 허성은 동인이었지만 서인 황윤길의 의견에 동조하여 전쟁이 일어난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동인은 ‘서인들이 세력을 잃었기 때문에 인심을 동요시킨다.’고 공격했다.
마침내 선조는 ‘전쟁이 없다’를 국론으로 정했다. 여당 동인의 편을 든 것이다.
이럴 즈음에 왜승 현소를 빈접(儐接)한 선위사 오억령이 ‘내년에 길을 빌어 명나라를 침범할 것이다.’고 확언하는 현소의 말을 듣고서 즉시 보고했으나 오히려 체직되었다. (선조수정실록 1591년 3월1일)
‘전쟁이 없다’고 결정했는데 오억령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했으니 이는 국론분열이고 국기문란이었다.
불행하게도 1년 뒤인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김성일은 ‘전쟁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없다’고 단언하여 ‘부정의 오류(false negative)’를 범했다.
이런 오류는 김성일의 잘못된 일본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명나라를 상국(上國)으로 모시고 일본을 오랑캐의 나라로 깔보았다. 1543년에 포르투갈로부터 조총을 받아들인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고, 퇴계 이황의 기민교린책(羈糜交隣策)에 따라 문명국 조선이 야만국 일본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조선이 명나라 정벌에 앞장서 주라(貴國 先驅入朝)’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조에게 보낸 국서조차 무시했다.
류성룡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왜적은 반드시 군사를 출동시키지 않을 것이며, 설사 출동시킨다 하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속단했다. (선조수정실록 1591년 5월1일)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이 참담한 현실에 필자는 왜 임진왜란 전야를 말하는 것일까?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6.11.16 이테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