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생각한다.
원님 재판, 자의적 재판 ...
김세곤
2015. 12. 27. 22:09
원님재판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춘향전이다. 변사또는 춘향이가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형틀에 묶어놓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다그친다. 권선징악 스토리로 만들다 보니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지방 고을에서 원님은 행정과 사법을 총괄하는 절대권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사법과 행정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국왕이 수사의 최고 책임자인 동시에 재판의 최고 책임자였다. 죄인을 다스리는 형조는 오늘의 검찰과 법원을 겸한 기관이었고 중대 범죄를 다루는 의금부 역시 수사와 판결을 같이 했다.
원님재판은 결국 원님이 수사하고 원님이 재판한다는 뜻으로,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경우를 비꼬는 의미로 많이 쓰였다.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 즉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혐의자나 혐의 내용을 법원이 심판하지 못하는 게 근대 사법체계인데, 프랑스 혁명 이전의 규문주의(糾問主義)처럼 소추 기관의 소추 없이 법원이 직권으로 심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창조한국당이 문국현 대표에 대한 유죄 판결을 원님재판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공천헌금 수수와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하고는 기소 내용에 없는 사안을 갖고 유죄로 판결해 당선무효형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그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법관의 양심이란 직업적 양심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독특한 소신을 적용하면 현대판 원님재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원님재판은 규문주의보다는 자의적 판결, 요즘 쓰는 말로 ‘튀는 판결’을 의미하는 것 같다.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재판부 의사가 많이 투영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가장 좋은 판결은 역시 사회 구성원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 소장의 발언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보편적 상식’의 의미도 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튀는 판결 논란이 된 PD수첩 무죄 판결 이후 여론조사를 보면 잘된 판결이라는 응답이 60.5%로 잘못됐다는 응답(30.4%)의 배에 달했는데 이 경우에는 소수의견이 보편적 상식이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또 독특한 소신을 문제 삼을 때 주로 좌편향 이야기를 하는데, 자칫 우편향 소신은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