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년~1613년). 우리는 그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재치와 해학의 명콤비 ‘오성과 한음’의 한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덕형은 최근 종영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으로 재조명되었다. 그는 뛰어난 행정력과 외교력으로 국난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고, 올곧음으로 인륜(人倫)을 지킨 재상이었다.
이덕형은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있었다. 14세에 외숙인 영의정 유전의 집이 있는 포천의 외가에서 지내면서 봉래 양사언 · 양사기 형제와 어울렸다. 양사언은 그와 수십 편의 시를 주고받고서 “그대가 나의 스승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이덕형은 17세에 동인의 거두 이산해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산해의 숙부인 토정 이지함이 이덕형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사윗감으로 추천하였다 한다.
1580년(선조 14년)에 이덕형은 20세에 문과 급제하였다. 이때 25세인 이항복도 같이 급제하였다. 이리하여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평생 지음(知音)이 되었다.
이덕형은 1591년 31세의 나이에 젊은 나이에 예조참판 및 대제학이 되었다. 조선왕조 500년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최연소 대제학이었다.
1592년(선조 25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사헌 이덕형은 좌의정 유성룡, 도승지 이항복과 함께 전란 극복에 앞장섰다. 4월30일에 선조는 한양을 떠나 평양까지 피난하였다. 6월8일에 왜군이 대동강까지 왔을 때 선조가 평양을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때 이덕형은 한 척의 배로 대동강에서 일본 사신 겐소(玄蘇)과 담판을 하였다. 비록 교섭이 결렬 되었으나 시간은 벌 수 있었다.
평양을 떠난 선조는 6월10일에 정주에 도착하였다. 정주에서 조정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 때 이덕형이 청원사(請援使)가 되었다. 이덕형이 명나라로 떠나던 날, 남문 밖까지 전송 나온 이항복에게 이덕형은 “말이 한 필 뿐이어서 하루에 이틀의 거리를 달릴 수 없다.”고 한탄하였다. 그러자 이항복은 이덕형에게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넘겨주면서 “만약 원군과 함께 오지 않으면 그대는 나를 시체더미에서나 찾아야 할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이덕형 또한 입술을 깨물며, “원병이 오지 않으면 나는 내 뼈를 중국의 노룡령(盧龍嶺)에 묻고 다시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소.”라고 하였다.
이덕형은 명나라에서 외교력을 발휘하여 이여송이 이끄는 군대 5만 명을 파병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1593년 1월6일에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1593년 10월에 선조는 서울로 환궁하였다. 이 때 이덕형은 잠시도 대궐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대궐 가까운 곳에 기거하면서 애첩에게 시중들게 하였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덕형은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갈증이 심하여 미처 말도 못하고 손을 쑥 내미니 애첩은 즉시 시원한 꿀물을 내놓았다.
한음은 주저 없이 그 물을 마셨다. 이윽고 애첩을 쳐다보더니 “나는 이제 너와 헤어져야겠다.”하고는 나가버렸다.
소박을 맞은 애첩은 내내 울다가 다음날 이항복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이항복도 이상하여 이덕형을 만나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덕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녀의 영리함이 참으로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할 정도라네. 전란의 시기에 내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판다면 낭패 아닌가? 그녀에게 내가 빠져 버릴 것 같아 내친 것이네.” 그제야 이항복은 머리를 끄덕이며 탄복해 마지않았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덕형은 명나라 경리 양호의 접반사가 되었다. 그는 양호를 설득하여 왜적을 무찌르게 하였다. 명나라는 9월에 직산(稷山)에서 적의 예봉을 꺾음으로써 서울이 평안할 수 있었다.
이때 양호는 이덕형을 매우 뛰어난 인물로 여기어 선조에게 “이모(李某)는 재상 자리에 앉아 있을 만한데, 아직까지 백관(百官)의 위치에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고 하였다. 선조는 즉시 이덕형을 우의정에 임명하였다. 그의 나이 38세였다.
1598년 10월에 좌의정 이덕형은 순천으로 내려가 명나라 제독 유정, 수군제독 진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함께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사를 대파하였다. 11월19일에 이순신이 노량에서 전사하자, 이덕형은 동요하는 수군을 통제하고 수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