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율기 6조’ 제1조 칙궁(단정한 몸가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정요(政要)》에 이르기를 “벼슬살이하는 데에 석 자의 현묘한 비결이 있으니, 첫째는 청렴〔淸〕이고, 둘째는 삼감〔愼〕이고, 셋째는 근면〔勤〕이다.” (政要云 居官有三字玄訣 一曰淸 二曰愼 三曰勤)
청(淸)은 청렴(淸廉)이다. <목민심서> ‘율기 6조’ 제2조 청심(청렴한 마음)에는 “청렴은 수령의 본무(本務)로서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관을 잘 할 수 있는 자는 없다.”하였다.
신(愼)은 삼감이다. 정약용의 남양주 생가 서실 이름은 여유당(與猶堂)이다. 여유(與猶)는 노자 <도덕경> 제15장에 나오는 말이다.
“여[與]여 !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유[猶]여 !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 하므로 매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지 않으며, 사방의 이웃이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자기 몸에 이를까 염려한 때문에 매우 부득이한 경우라도 하지 않는다.
또한 청백리 송흠의 호는 지지당(知止堂)이다. 지지는 ‘멈추는 것을 안다’는 의미인데 노자의 <도덕경> 제44장에는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고 하였다.
근〔勤〕은 부지런함이다. 다산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유산으로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주었다.
‘근(勤)’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때까지 미루지 말며, 갠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 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아울러 경복궁의 정전(正殿)은 근정전(勤政殿)이다. 근정전은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조회의식)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인데, 작명가(作名家) 정도전의 글을 읽어보자.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황폐하게 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또 《서경》에 이르기를, ‘아침부터 해가 기울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일하여, 만백성을 잘 살게 했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왕(文王)의 부지런한 바입니다. 임금으로서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데도, 편안히 지내면 교만과 안일이 생기며, 또 아첨하는 사람들은 ‘천하 국가의 일 때문에 나의 정력을 소모시켜 나의 수명을 단축하는 것은 불가하다.’하고, 또 ‘이미 숭고한 자리에 있는데 어찌 자기를 낮추고 수고를 해야만 됩니까?’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쾌락으로 혹은 사냥으로, 혹은 토목(土木)으로써 아첨하여 무릇 황음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한편 정약용이 인용한 정요(政要)는 성호 이익의 수제자 안정복(1712-1791)이 1757년에 지은 《임관정요(臨官政要)》를 말한다. 다산의 ‘청·신·근’ 글은 <임관정요> 1편 정어(政語) 정기장(正己章 : 몸가짐을 바르게 함)에 나온다.
여씨 <동몽훈 童蒙訓>에서 말했다. “관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3가지 법도가 있다. 청렴, 신중, 근면함이다. 이 3가지를 알면 몸가짐을 알 것이다. <동몽훈>은 중국 송나라 때 여본중(1084-1145)의 저서로 어린 아이들의 교육 입문서(入門書)이다.
그렇다면 청 · 신 · 근의 원전(原典)은 <동몽훈>이다. 안정복은 동몽훈의 글귀를 인용하였고, 정약용은 안정복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한편 <명심보감> ‘치정편(治政篇)’에도 동몽훈의 청 · 신 · 근 글이 실려 있다.
청렴과 삼감과 근면. 이 세 가지는 공직자가 항상 새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