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칼럼

다산 정약용, ‘애절양’ (哀絶陽) 시를 읊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2015. 6. 8. 17:32

다산 정약용, ‘애절양’ (哀絶陽) 시를 읊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애절양 哀絶陽’ ‘남자의 거시기가 잘림을 슬퍼하는’ 시

1803년(순조3) 가을 강진에서 유배중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한 농민의 슬픈 사연을 듣고 시 한 수를  지었다. 


그 사연은 노전(蘆田)에 사는 백성이 낳은 남자아이가 사흘 밖에 안 되었는데 군적(軍籍)에 들어가고 아전이 소를 빼앗아갔다. 백성이 칼을 뽑아 그 양경(陽莖)을 스스로 자르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당한다.” 라고 하였다. 농민의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양경을 가지고 울부짖으며 관청에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이 시가 바로 ‘애절양 哀絶陽’이다. ‘남자의 거시기가 잘림을 슬퍼하는’ 시이다.

갈 밭 마을 젊은 아낙네 울음소리 길기도 해   蘆田少婦哭聲長
군청의 문 향해 울며 하늘에 호소하네.        哭向縣門呼穹蒼
싸우러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않을 수는 있어도 夫征不復尙可有
옛날부터 사내가 남근 자른다는 말 못 들었네 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舅喪已縞兒未澡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조 ·부 · 자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네.     三代名簽在軍保

하소연 하러 가니 호랑이 같은
문지기 관청에 지켜 섰고,                  薄言往愬虎守閽
이정 里正은 호통치며 소마저 끌고 가네.    里正咆哮牛去皁
칼 갈아 들어간 방에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磨刀入房血滿席
남편은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自恨生兒遭窘厄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억울한데   蠶室淫刑豈有罪
민 閩의 거세 풍습은 참으로 비통했네. 1)     閩囝去勢良亦慽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生生之理天所予
하늘의 도는 아들 주고 땅의 도는 딸을 주지   乾道成男坤道女
말이나 돼지 거세도 가엾다 말하거늘           騸馬豶豕猶云悲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일인데 더할 말 있으랴 況乃生民思繼序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豪家終歲奏管絃
쌀 한 톨 비단 한 치 내놓는 일 없더구나   粒米寸帛無所捐
너나 나나 같은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 거냐 均吾赤子何厚薄
객창 客窓에서 거듭 시구편 鳲鳩篇만 외우노라 2) 客窓重誦鳲鳩篇
이 얼마나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는 시인가. 민중의 아픔을 읊은 사회시(社會詩)이다.   

정약용은 1818년 봄에 <목민심서>를 집필하면서 ‘병전(兵典) 6조’ 제1조 첨정(簽丁 : 장정을 병적에 올리는 일)에서 ‘애절양’ 시를 인용하였다. 

정약용은 첨정(簽丁)에서 군정의 폐해를 지적하였는데, “군포를 거두는 군정의 폐단이 커져서 생민의 뼈에 사무치는 병통이 되었으니, 이 법을 고치지 아니하면 백성은 모두 죽고야 말 것이다” 하였다.

애절양 시는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 폐단의 극치이다. 황구첨정은 젖먹이 어린애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군포(軍布)를 징수하던 횡포이고, 백골징포는 죽은 사람을 마치 사람인 것처럼 군적(軍籍)에 올려놓고 군포(軍布)를 징수하는 횡포였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병역의무자 선정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남자의 양경을 자른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한탄하였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백성들의 실정은 걱정하지 않고 속례(俗例)만 따르므로, 그 당시 한 독한 백성이 이와 같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1) 옛날 중국 민閩 땅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환관을 시키려고 거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인간으로서는 차마 못 할 일이었다.  
2) 1801년 겨울에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은 동문 밖 노파의 주막집 단 칸 방에서 기거하였다. 그는 중죄를 지어서 이런 사회적 모순을 목격하면서도 하릴없이 시구편(鳲鳩篇)이나 외웠다. 시구편은 < 시경(詩經)> 조풍(曺風)에 나오는 시인데, 뻐꾸기의 태도를 군자의 바른 행위에 비교하고, 뻐꾸기가 뽕나무에 앉아서 새끼 일곱 마리에게 골고루 먹이를 먹여 제대로 기르는 것을 칭송하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