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소릉 복위 소. 두번 소를 내다. 김세곤 자료 올림
김일손의 소릉 복위 소 - 소릉은 단종의 모후 현덕왕후 권씨이다. 단종을 낳은지 2일만에 돌아가셨다. (24세)
○ 연산조(燕山朝)에 충청 도사(忠淸都事) 김일손(金馹孫)이 소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우리 국가가 완전하고 결함 없기가 정히 금구(金甌)와 같지만 그래도 한 군데 이지러진 데가 있으니, 온 조정의 신자가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살면서 강상(綱常)이 무너진 속에서 희희낙락하며 무슨 일이 있는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옛부터 제왕은 배위 없는 독주(獨主)가 없거늘, 문종(文宗)만은 배우자 없는 독주이옵니다. 광릉(光陵)이 제세(濟世)의 방략을 가졌고 뭇 사람의 요구에 못 이겨 부득불 선위(禪位) 받은 것은 종사 대계를 위함이지만, 소릉을 폐위시킨 것은 아마도 세조의 본의가 아닐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는 문종이 동궁에 있을 때 소릉은 이미 승하하였으니, 노산복위(魯山復位)의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음은 명백한 일이옵고 친정 어머니의 연고 때문이라면 당시 앞장서서 난을 꾸민 여러 사람의 아들은 죽였어도 딸은 용서하였으니, 여자는 밖의 일과 관계없기 때문입니다.송현수(宋玹壽)는 노산(魯山)의 장인이나, 아들 거(琚)와 조카 영(瑛)은 이미 선왕(先王)의 사면을 받아서 조정에 벼슬하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소릉을 용서하여 추복하지 못하겠습니까. 신은 원컨대 전하께서 소릉을 추복하여 풀 베고 짐승 놓아 먹이는 것을 금하고 그 신주를 종묘에 부묘(祔廟)한다면 한 나라의 강상에 다행스럽겠나이다.” 하였다.
○ 연산(燕山) 2년(1496)에 대사간 김극뉵(金克忸)과 사간 이의무(李宜茂), 헌납 김일손(金馹孫), 정언 한훈(韓訓)ㆍ이주(李冑) 등이 헌의(獻議)하여 아뢰기를, “신 등이 생각건대 문종의 원비(元妃) 권씨의 죽음이 노산 이전이었는데도 이를 동시에 폐위시켜서 문종만은 일위(一位)로 흠향하여 지금까지 배존(配尊)의 신주가 없으니 이것은 측은한 일이옵니다. 성종은 예전에 적몰한 노비들을 노산궁인(魯山宮人) 송씨(宋氏)에게 돌려주어서 그 생활을 돕게 하였고 그 일가족속까지 사하여 모두 벼슬에 나오게 하였으니 성종의 지극한 뜻을 여기서 또한 볼 수 있사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소릉묘주(昭陵廟主)를 추복하여 문종에게 배위하게 하오면 종묘에 다행일까 하옵니다.” 하였다. 이 헌의가 예조에 내리매 예조는,“예로부터 종묘에 배위 없는 독주(獨主)가 없는데도 우리 문종은 종묘에서 홀로 제향을 받으니 의리에 온당치 못합니다. 그러나 소릉을 조종에서 폐위시킨 지 이미 오래되어 경솔하게 복위하기가 어려우니 거행할 수 없습니다.”고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