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호남이여!

약무호남 시무순신, 김세곤 무등일보 2014.8.6

김세곤 2014. 8. 6. 01:41

기고- 약무호남 시무순신 若無湖南 是無舜臣
입력시간 : 2014. 08.06. 00:00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명량’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이순신과 아들 회가 들판을 걸으면서 울돌목 회오리에 대하여 한 이야기입니다. “천행이었다.” “천행이라니요?” “그랬지. 그 순간에 백성들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더냐.” “백성을 두고 천행이라 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명량’의 마지막에는 전라도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 7도가 일본에 점령되고 선조가 압록강변 의주로 피난을 갔어도 전라도만은 무사하였습니다. 이순신이 바닷길을 막고 호남의병들이 육로를 지켜 호남은 온전하여 나라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1597년에 일본은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이순신 제거작전입니다. 일본의 간계에 놀아 난 조정과 선조는 이순신을 하옥하고 백의종군 시킵니다.

그런데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7월16일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고 8월3일에 이순신은 다시 전라좌수사겸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습니다.

8월15일에 이순신은 보성 열선루에서 선조의 유지를 받았습니다. “수군의 전력이 너무 약하니 권율의 육군과 합류해 전쟁에 임하라”는 어명이었습니다. 이순신은 곧바로 장계를 작성하였습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나이다. 비록 전선수가 적다하나 보잘 것 없는 신이 아직 죽지 않은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는 못 할 것입니다.”

9월16일에 이순신은 명량에서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무찌르고 왜선 31척을 격파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이 날의 ‘난중일기’에 ‘실로 천행 天幸이었다’고 적었습니다.

이후 이순신은 고하도에서 겨울을 나면서 전선 40척을 건조하였고, 1598년 2월에 완도 고금도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습니다. 여기에서 조선수군은 함대가 80여척으로 늘어났고 군사도 8천명에 이르렀으며,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도 합류하였습니다.

8월 하순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조명연합군은 대대적인 왜군 공격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였습니다.

9월 중순에 조명연합군 동로군은 울산성의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했지만 실패하였고, 명나라 중로군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 군에게 대패하여 1만 명 이상 죽었습니다.

또한 명나라 제독 유정과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서로군과 진린·이순신의 연합수군이 순천 왜교성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9월21일부터 10월9일까지 공격하였으나, 제독 유정의 무기력한 지휘와 육군과 수군간의 엇박자로 왜교성 점령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한편 일본은 조선에 있는 왜군을 11월15일까지 철수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를 안 이순신은 고니시 왜군을 치기 위하여 여수 장도로 출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서로군 제독 유정은 밀약을 하여 고니시를 보내기로 하였고, 뇌물을 받은 진린도 고니시의 배가 남해로 가는 것을 허용하여, 시마즈의 왜군들이 구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군의 협공을 우려하여 이순신은 노량으로 가서 왜군을 치기로 하였습니다. 진린은 이를 말렸으나, 이순신이 뜻을 굽히지 않자 진린도 마지못하여 해전에 참여하였습니다.

11월19일 새벽 2시경부터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순신 함대는 선두에서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이 와중에 이순신은 탄환을 맞았습니다. 그는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절명하였습니다.

이순신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통곡하였고, 늙은 할미와 어린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후 여수 해안가의 민초들은 스스로 충민사를 세웠고, 석천사 사찰에는 그의 영혼이 모셔졌습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이는 이순신이 1593년 7월16일 한산도에서 친구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돌아가신 뒤는 약무호남 시무순신 若無湖南 是無舜臣입니다. 전라도 각 사당에서 이순신을 모시는 호남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못잊어 하고, 그가 다시 호남을 이끌어 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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