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호남이여!

명량해전, 남도일보 칼럼,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2014. 7. 22. 19:13

[김세곤 칼럼]명량해전

남도일보  |  webmaster@namdo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7.22  17:50: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인터넷에서 영화 ‘명량’ 예고편을 보았다. “이 싸움은 불가합니다.”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 설 곳도 없다” “전군 출정하라.” 대사(臺詞)가 가슴에 뭉클하다.
사실 명량해전은 조선 수군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13척vs 133척. 10배가 넘는 일본 수군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더구나 7월16일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모두 죽자, 군졸은 물론 장수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도 조선 수군은 승리하였다.
그러면 명량해전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조선수군이 전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선조는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8월3일에 진주에서 임명장을 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전라도로 달려왔다. 15일에 이순신은 보성 열선루에서 선조의 어명을 받았다. 수군 전력이 너무 약하니 권율의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순신은 곧바로 장계를 보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비록 전선수가 적다하나 보잘 것 없는 신이 아직 죽지 않은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19일에 이순신은 장흥 회령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로부터 전선을 인수받고 24일에 해남 어란포에 정박했다. 28일에 왜선 8척이 불시에 공격을 하였다. 위협을 느낀 이순신은 8월29일에 진도 벽파진에 진을 쳤다. 9월2일에 경상우수사 배설이 탈영하였다. 군사들은 사기가 최악이었다.
9월7일에 군관 임중형이 와서 왜선 55척 가운데 13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도착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날 오후에 왜선 13척이 쳐들어왔다. 왜군은 밤 10시경에도 공격하여 자정이 되자 물러갔다.
14일에 군관 임준영이 보고하였다. 왜선이 200여척 중 55척이 이미 어란포에 정박하였고 곧 조선수군을 쳐부수고 서해안을 따라 서울로 올라간다는 1급 첩보였다.
결전의 날이 왔음을 감지하고 이순신은 15일에 해남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명량(鳴梁)을 전투장소로 택한 것이다.
명량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잇는 진도대교 바로 아래를 흐르는 수로로, 폭도 좁고 큰 암초가 있으며 하루에 네 번 물살이 바뀌는 급류여서 운항이 어려운 곳이었다.
15일 밤에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일장훈시를 하였다.
병법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고, 살려고만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족히 1천명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했는데 이 두 마디 말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9월16일 오전에 결전이 시작되었다. 조선수군은 판옥선 13척 뿐. 초탐선 32척이 있다고 하나 이는 정찰용이었고, 100여척의 피난선이 전함 뒤에 배치되었지만 이 또한 위장용이었다.
반면에 일본수군은 300척이 넘었다. 다행히 명량의 좁은 해협 때문에 소형군선 133척이 전투를 하였고, 대형군선은 해협 밖에서 대기하였다.
전투가 시작된 시간은 오전 11시경. 이때는 조류가 왜군에게 유리하였다. 왜군은 속전속결을 꾀했다. 왜선 130여척은 곧바로 조선수군을 포위하였다. 이순신은 홀로 분전하여 총포를 쏘고 싸웠다. 그런데 이순신을 지켜줘야할 직할부대장 김응함의 배 조차 나서지 않았다. 이순신이 기를 세워 호령을 치니 그때서야 안위와 김응함의 배가 움직였고 조선수군은 전투에 가세하였다.
조선함대는 힘껏 일본수군을 물리쳤다. 왜장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물에서 건져내어 토막토막 잘랐더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오후 1시경이 되자 조류가 바뀌었다. 왜선은 역류로 되밀리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선수군은 총공격을 하였다. 그리하여 왜선 31척을 격파시켰다. 통쾌한 승리였다.
명량해전은 참 특이한 전투이다. 해남과 진도의 산 위에서 전라도 백성들이 숨죽이고 지켜 본 해전이었다. 해상 의병 참여, 철쇄설, 거북선 출현설 등 이야기도 많다. 강강술래도 이 해전으로 인하여 유명해졌다.
7월30일에 개봉되는 ‘명량’이 흥행몰이를 하면 명량에 관광객이 넘칠 것이다. 지금부터 명량마케팅을 위해 명량과 주변 유적지를 유튜브, SNS 홍보를 하였으면 한다. 명량! 이제 대박이다.
< 호남역사연구원장> 

<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