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과 호남사람들 28회, 남원 심수관 도예관에서 , 김세곤 글 무등일보
호남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3부:심수관과 사쓰마 도자기의 역사 한 눈에 |
제28회 400년 이어 온 조선 도공의 뿌리 - 남원 심수관 도예관에서 (1) 초대 조상 심당길 백토 발굴 유명세 제14대 심수관 소설가 시바료타로의 조선 도공 애환 그린 '어찌 고향을 잊으랴' 작품 주인공 널리 회자 일본 전역서 명품 대접 15대 심일휘 가업 전승 조선인임을 숨기지 않아 |
입력시간 : 2013. 07.18. 00:00 |
|
심수관 도예관을 들어서자마자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심수관 도자기의 기원과 역사, 도자기 전쟁과 남원성 전투, 큐슈지역
6대 도자기 비교 등 여러 코너가 있다.
우선 심수관 도자기 개요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영상실을 찾았다. 영상은 5-6분 정도의
분량이지만 심수관과 사쓰마 도자기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두 번 연달아 보았다.
이윽고 심수관 도자기의 역사가
적혀 있는 터치검색시스템 앞에 선다. 여기에는 심수관가 초대 조상인 심당길에서부터 남원도예관 건립까지의 역사가 있다. 터치스크린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내용을 읽는다.
먼저 '정유재란 시 일본에 납치된 조선 도공, 심당길'이다.
1598년 사쓰마 번주
藩主였던 시마즈 요시히로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도공 80여명을 납치해 끌고 갔다. 이중 40여명은 가고시마의 구시키노 시마비라 포구에 상륙했고
거기엔 심수관가의 초대 심당길도 있었다. 심당길의 본관은 경북 청송인으로 대학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
화면은 '박평의와 함께 백토 발굴'이다.
심당길은 1603년 시마비라에서 현재의 거주지인 나에시로가와로 이주하였다. 이주한 지
2년 뒤 초대 심당길은 처음으로 나에시로가와에 도자기소를 열고 1614년, 갖은 노력 끝에 박평의와 더불어 백토 白土를 발굴해 오늘의
사쓰마도자기를 만들어 냈다.
그 다음은 '시로 사쓰마와 구로 사쓰마'이다.
당시 번주는 조선 도공들의 기술을 높이
사서 도공들을 무사의 직급으로 대우하고 그들이 만들어 낸 도자기에 지명을 넣어 '사쓰마 야끼'라 불렀다.
그 후 메이지 유신
시대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간 번주의 보호 아래 조선 도자기의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와 기술을 갈고 닦았다. 옛 방식의 등요 登窯에서
구워진 도자기 중 백색의 도자기(시로 사쓰마)는 번주에게 전량 상납되었고 검은색의 도자기(구로 사쓰마)는 서민들의 생활용품으로 쓰였다.
이어서 '대한민국 명예 총영사, 한일 문화교류에 큰 역할' 화면을 본다.
|
1964년 이름을 물려받은
제14대 심수관은 소설가 시바료타로의 '어찌 고향을 잊으랴'라는 작품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
대화병을 출품했으며 전국에서 '심수관전'을 개최하고 있다. 또한 도자기를 통하여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와 친선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1988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다.
제14대 심수관(본명 심해길)이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 소설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의 소설 '어찌 고향을 잊으랴'의 주인공이라니!
'어찌 고향을 잊으랴'는 고국을 등지고
떠나온 조선 도공들의 애환을 가슴 저리게 그린 소설이다. 국영 NHK TV는 이 소설을 토대로 8시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바람에
심수관 도자기는 일본 전역에서 명품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시바료타로는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역사 소설가이다. 그의 본명은
후쿠다 데이이치(福田定一)이지만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정신을 배운다며 필명을 시바 (司馬)로 했다. 그는 극우민족주의 편향 보도로 유명한
산케이신문의 기자로 활약하다 1970년부터 소설가로 전업했다.
시바료타로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여명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1968년부터 1972년에 걸쳐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대표 장편으로서 일본에서만 무려
2천만권 이상이 팔릴 만큼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책이다.
'언덕 위의 구름'은 농업 국가였던 일본이 근대화된 군대를 마련하여
세계로 진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68년 메이지유신부터 1905년 러일전쟁까지의 30여 년은 문화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일본 역사 속에서
참으로 특이한 시기다.
이 책은 러일전쟁에서 핵심참모로 일한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기병대에서 활동한 그의 형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중흥을 이끈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 고향이 같은 세 젊은이의 활약상을 그렸다. 러일전쟁에서 일본
해군은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 발틱함대를 궤멸시킨다. 그 저력은 어디서 나왔는가. 그것은 낙천주의자들의 소년 같은 희망이 그 일을 해내게 한
것이다.
'언덕 위의 구름'은 이러한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행복한 낙천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낙천가들은 그러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앞만 보고 걷는다. 올라가는 언덕 위의 푸른 하늘에서 만약 한 덩이의 흰 구름이 빛나고 있다면, 그것만 바라보며 언덕을 올라간다.
여기에서 하나 더 언급할 사람은 러일전쟁 영웅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이다. 그는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면서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을 썼다. 전승 파티에서 기자가 묻자 그는 이순신을 군신 軍神으로 대하면서 자기는 이순신을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고 겸손해 하였다. 이
이야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에 있는 '충무공 이야기'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언덕위의 구름'은 NHK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였고, 2007년에는 마쓰야마 시에 ‘언덕 위의 구름 박물관’도 세워졌다.
이렇게 시바 료타로 덕분에 유명해진
14대 심수관은 1999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8년에는 남원명예시민이 되었다. 가고시마현이 만든 관광용 안내책자에 그의 사진이 실려
있을 만큼 14대 심수관은 일본 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터치스크린의 마지막 부분은 '남원 심수관도예전시관에 작품 기증'이다.
1999년 1월, 14대 심수관으로부터 대를 이어받은 심일휘가 15대 심수관으로 이름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전통의 가마를 지켜나가고
있다.
1998년에는 14대 심수관과 함께 남원 도자기의 ‘혼불’을 채취해 사쓰마에 안치하는 이벤트 ‘400년 만의 귀향’을
기획, 추진하였다.
2011년 남원의 심수관도예전시관에 12-15대의 작품 13점을 기증했다.
15대 심수관인
심일휘는 1959년 생으로 와세다 대학 교육학과를 나왔다. 그는 다음 가업을 잇기 위해 교토도공기술전문학교를 다시 마쳤다. 그 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파엔차 국립도예학교를 졸업하였다. 또한 1990년에는 경기도 김일만 토기공장에서 김칫독 제작 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심수관가는 초대가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온 심당길이다. 그의 본명은 심찬인데 원래 그는 도공이 아니라 사옹원의 관리였고, 일본에
와서 도자기 굽는 것을 배웠다는 설도 있다. 심수관가는 2대는 심당수, 3대 심도길, 4대 심도원, 5대 심당길, 6대 심당관, 7대 심당수,
8대 심당원, 9대 심당영, 10대 심당진, 11대 심수장으로 이어 오다가, 12대 심수관 때부터 15대 까지 심수관이란 이름이 습명으로
내려온다.
심수관가는 조선인이다. 일본사회에서 조선인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말 당당하다. 반면에 촌장을 한 박평의는 나중에
사무라이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일본인으로 살고 있다.
김세곤 (역사인물 기행작가, 호남역사연구원장) zmd@chol.com zmd@chol.com'>김세곤 (역사인물 기행작가, 호남역사연구원장)
zmd@chol.com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