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죽천 박광전 기행 2, 김세곤 글, 보성군청 연재

김세곤 2011. 10. 26. 04:53

글 제 목 제2회 국난 중에도 민생안정이 먼저입니다
작 성 자 김세곤
일 자 2011년 10월 24일
제2회 국난 중에도 민생안정이 먼저입니다. -
죽천 박광전, 광해군에게 시무책을 올리다. (2)

광해군에게 올리는 박광전의 소(訴)는 계속된다.

삼가 생각하건대, 시국의 일이 예측하기 어려워지니 지혜 있는 선비도 계책이 없고, 흉한 칼날이 스치는데도 용사는 손을 묶고 있으니, 성패(成敗)가 호흡 (呼吸)하는 사이에 달려있고, 존망(存亡)이 순식간에 결판 날 상황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진실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항간에서는 사람들이 사사로이 논의하기를, “적병이 좌도에서 철군하여 우도로 옮겨서 모두 거제도로 들어갔으니, 그들의 마음은 하루도 호남에 있지 않는 적이 없는데, 명나라 군사와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는 모두 팔거(八莒 : 칠곡군)ㆍ정암나루[鼎津] 등 상류에 웅거하였으니, 적진과의 거리가 하룻길도 안 되는 곳입니다.

만약 적병이 진해(鎭海)ㆍ고성(固城)을 경유하여 바로 섬진강(蟾津江)쪽으로 향한다면 의령에 있는 군사는 이미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섬진강 위아래 60리에 걸친 수비병도 모두 피로하고 굶주린 군사들이어서, 흉한 왜적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이미 어찌 할 바를 모를 것이니, 팔거ㆍ정암나루의 구원도 벌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전일에 진주성의 함락이 명확한 증거입니다. 구례를 분탕질 친 왜적이 철수하여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간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명나라 군사에게 청하고 원수에게 명을 내려 “병력을 나누어서 진주ㆍ순천 등지에 진을 치고 방비하면 섬진강의 군사가 급할 때에 구원병을 얻어서 진주의 실패를 면하여 호남도 무사히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이 또한 이치가 있는 듯합니다. 다만 장막 속에서 승전할 계책을 짜는 것과 병사를 통솔하는 일은 그 주도면밀함이 어찌 항간의 논의보다 못하겠습니까? 이것은 필시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신이 항간의 논의를 감히 좇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우선 조정의 논의를 보류하고 옳은지 그른지를 시험해 보자는 것입니다.

민심을 두고 말하면 그것은 국맥(國脈)이 관계되는 것입니다. 전일에 고을의 수령과 변방의 장수들이 세금을 무겁게 매겨 백성에게 재물을 긁어 들였는데 그 이익은 아래로 돌아가고 원망만 위로 돌아갔으니, 증자(曾子)의 이른바 “민심이 흩어지는” 상황이 오래되었습니다.

증자가 말한 ‘민심이 흩어지는 상황’은 <대학> 제10장에 나온다. 증자는 “근본을 밖으로 하고 말단을 안으로 하면 백성을 다투게 하여 쟁탈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이 모인다.”고 하였다.

글은 계속된다.

근년 경인년(1590년)에 일본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나라에는 귀천(貴賤)도 없고 요역(徭役 : 무상으로 노역을 하는 일)도 없으며 집집마다 곡식이 쌓여서 쓰기를 물을 마시거나 불을 때듯이 사용한다.” 하니, 변방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러워하였습니다. 임진년(1592년)의 변이 마침 그 시절에 일어나자 뭇 사람이 수군거림에 차마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뒤에 흉적의 칼날이 미치는 곳마다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불사르고 처자까지 빼앗아 가자 백성들의 마음이 비로소 원망하고 비로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우리나라로서는 정말 다행입니다.

가령 저 왜적이 변방 백성을 편안하게 어루만지고, 한 때라도 인정을 베풀어 사탕발림을 하였더라면 민심이 어떻게 되었을지 장차 예측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변란이 일어난 뒤에 미천한 백성들은 찾아가 호소할 곳이 없고 탐욕스런 관리들은 만족 할 줄 모르는 욕심을 멋대로 부리니,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말이 길어집니다. 아! 지난 날 인심은 이미 무너지고 찢겼지만 장래의 인심을 수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해야 할 일은 군사를 뽑는다든지 군량을 운반하는 것인데, 무릇 군무에 관한 일은 비록 심히 고통스러우나 국가를 수호하고 백성을 살리는 길을 위해 백성을 전장에 보내는 것이니 이는 형편상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긴요하지 않은 공물(貢物)이나 명분 없는 세금에 대해서는 감면할 만한 것은 감면해 주어, 백성들로 하여금 국가가 부득이한 가운데서도 또 부득이한 은혜를 베푼다는 것을 알게 한다면, 백성이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영민한 것이니 어찌 감동되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오늘날의 민생은 마치 말라죽은 풀과 같아서 살고자 하는 뜻이 전혀 없고, 오늘날의 민심은 썩은 새끼로 여섯마리의 말을 모는 것과 같이 심히 두려우니 관리들이 도적이 되어 백성을 내 모는 것이 누구의 허물이겠습니까?

왕세자 저하께서 남쪽으로 오시니, 만백성이 우러러 쳐다보며 일분(一分)의 은혜라도 받기를 크게 원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마땅히 자주자주 글을 내려 보내 수령들을 타이르고 변방 장수를 바로 다스리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도록 하고, 부로(父老)들을 불러 모아 궁휼히 어루만지는 뜻을 보이고, 때로는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여염집을 드나들면서 백성의 고통을 묻되, 만약 이전의 나쁜 행적을 되풀이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엄중하게 문책하면 민생이 안정될 것이고 민심도 수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사소한 일 때문에 간성이 되는 대장의 재목을 버리는 것은 사람을 쓰는 도량이 아니며, 백성의 기름과 피를 짜내는 것이 어찌 국가를 지키는 도리이겠습니까?


민심을 수습하여 힘을 모으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대저 물고기는 물에 의지하고 나무는 흙에 의지하고 사람은 식량에 의지하는 것은 그 이치가 하나입니다. 물고기가 물이 없으면 목마르고, 나무는 흙이 없으면 마르고, 사람은 먹을 것이 없으면 죽습니다. 식량은 전답에서 나오므로 그 전답을 경작하지 못하면 먹을 것이 어디로부터 나오겠습니까? 지난 해에 흉년이 들어 모든 곡식의 수확이 전보다 반이나 줄어들었는데, 요역(徭役)의 무거움은 이전보다 10배나 되어, 한 해가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집이 이미 가난하여 곳간이 텅텅 비었습니다.

요사이 본 바에 의하건대, 집집마다 아침저녁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자가 절반이 넘는데, 영남에 양식 운반하는 값과 주사격군(舟師格軍)의 식량은 달마다 쌀이 7ㆍ8석이나 되어 그것을 내고 나면 목숨 살아날 겨를이 없습니다. 이에 도망하고 유리(流離)하는 자가 잇달아서 촌락은 텅텅 비고, 안거나 붙들고 가는 이가 길가에 가득차고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즐비하여 참혹함이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조금 잘 사는 집도 이미 곳간이 텅 비어버려, 관리를 보충하는 데 응모하여 지난해 관곡(官穀)을 받은 것이 겨우 3분의 1 정도 얻었습니다. 공사(公私)가 모두 곤궁하니, 식구를 어떻게 할 것이며 군량을 어떻게 할 것이며 종자벼[種租]는 어찌할 것입니까? 이것으로 말하면 적병이 오기도 전에 나라의 근본이 먼저 뽑혀진 것이니, 오늘날의 사태를 가생(賈生)으로 하여금 보게 하였더라면 어찌 통곡만 할 뿐이겠습니까?

가생은 중국 한나라의 가의(賈誼)를 말한다. 가생은 문제(文帝)에게 상소하여, “지금의 사태를 보면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것이 두 가지요, 긴 한숨 쉴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