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수양
퇴임식, 송별회 꼭 해야 하나?, 김세곤 글, 광주일보 월요광장 칼럼
김세곤
2011. 6. 27. 03:07
퇴임식, 송별회 꼭 해야 하나?
2011년 06월 27일(월) 00:00
6월 30일로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다. 정년이 2년 남았지만 퇴직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퇴임식을 꼭 하여야 하는가이다. 요즘 저축은행의 비리 사태와 몇몇 중앙부처의 공직기강 해이 문제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데 나 홀로 독야청청하게 성대히(?) 퇴임식을 치를 것인지 갈등이 생기었다.
사실 정식으로 퇴임식을 하게 되면 준비하여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행사계획을 세워야 하고 손님도 초청하여야 한다. 플래카드, 꽃다발, 기념패 마련과 때로는 행운의 열쇠 증정, 퇴임하는 분의 행적을 사진으로 보여주기, 퇴임사와 송별사, 기념촬영, 다과준비 등 준비할 일이 많다. 그러려면 스무 명 남짓한 사무실 직원들이 업무 분담을 하여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후임자가 곧 올 것인데 직원들이 퇴임식에 신경 쓰게 하는 것도 부담이다. 또한 초청받은 노사단체와 관련 기관 등도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3년간 일하였으니 미우나 고우나 행사에 참석하고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이 또한 폐를 끼치는 일이다.
더구나 7월 1일부터는 우리나라 노사관계 역사상 처음 맞는 복수노조 시대가 되어 지방노동위원회가 신경 쓸 일이 엄청 많은데 이 시점에 정식으로 퇴임식을 꼭 하여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었다.
여러 번 생각한 결과 퇴임식은 아예 안 하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하였다. 그 대신 퇴임사는 꼭 하겠노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6월 월례조회에서 앞당겨 퇴임사를 하였다. 36년 6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에 대한 소회와 공무원의 길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것은 꿈과 변화 그리고 여유(與猶)이다.
나름대로 꿈이 있었기에 지방직 7급 공무원을 하다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노동부에 들어왔다. 영어 실력이 변변치 못하면서도 2년간의 영국 유학과 3년의 미국대사관 생활도 하였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호남의 역사인물에 대한 글을 쓰고 책도 냈다.
다음은 변화를 이야기하였다. 세상이 너무 빨리 그리고 정신 못 차리게 변하고 있다. 공무원도 트위터 ·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킹도 하고 세상읽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변화를 읽어야 생존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여유다. 공직자는 노자의 ‘도덕경’ 제15장에 나오듯이 조심하고 삼가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마치 살얼음이 언 겨울 강을 건너듯 조심하고,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듯 두려워하면서 공직의 길을 걸어야 한다. 특히 노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일이 많은 노동위원회 공무원은 항상 공정하게 일처리를 하고 구도자(求道者)로 지낼 것을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낭송하고 퇴임사를 마무리하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그런데 퇴직을 며칠 앞둔 마당에 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송별회를 꼭 하여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 직원들에게 송별회는 하겠다고 말하였지만, 반드시 저녁에 회식을 하고 서운하다고 2차로 맥주 한 잔 더 하며 노래방 가서 한 곡조 불러야 하는 것인지를 곱씹게 되었다.
사실 송별회 안 하는 일은 퇴임식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다. 식사도 같이 안 하고 떠나면 후배 공무원들이 얼마나 섭섭할 것인가. 너무 몰인정하다고 뒷소리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우연히 법정 스님의 수필 ‘아름다운 마무리’에 나오는 글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래, 법정스님 방식으로 송별회를 하자. 사무실에서 한 잔의 차와 과자, 과일로 조촐하게 석별의 정을 나누자. 이렇게 하면 조금 아쉬워도 국화처럼 향기로운 마무리가 되지 않겠는가.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실 정식으로 퇴임식을 하게 되면 준비하여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행사계획을 세워야 하고 손님도 초청하여야 한다. 플래카드, 꽃다발, 기념패 마련과 때로는 행운의 열쇠 증정, 퇴임하는 분의 행적을 사진으로 보여주기, 퇴임사와 송별사, 기념촬영, 다과준비 등 준비할 일이 많다. 그러려면 스무 명 남짓한 사무실 직원들이 업무 분담을 하여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후임자가 곧 올 것인데 직원들이 퇴임식에 신경 쓰게 하는 것도 부담이다. 또한 초청받은 노사단체와 관련 기관 등도 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3년간 일하였으니 미우나 고우나 행사에 참석하고 화환이라도 하나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이 또한 폐를 끼치는 일이다.
더구나 7월 1일부터는 우리나라 노사관계 역사상 처음 맞는 복수노조 시대가 되어 지방노동위원회가 신경 쓸 일이 엄청 많은데 이 시점에 정식으로 퇴임식을 꼭 하여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었다.
여러 번 생각한 결과 퇴임식은 아예 안 하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하였다. 그 대신 퇴임사는 꼭 하겠노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6월 월례조회에서 앞당겨 퇴임사를 하였다. 36년 6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에 대한 소회와 공무원의 길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것은 꿈과 변화 그리고 여유(與猶)이다.
나름대로 꿈이 있었기에 지방직 7급 공무원을 하다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노동부에 들어왔다. 영어 실력이 변변치 못하면서도 2년간의 영국 유학과 3년의 미국대사관 생활도 하였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호남의 역사인물에 대한 글을 쓰고 책도 냈다.
다음은 변화를 이야기하였다. 세상이 너무 빨리 그리고 정신 못 차리게 변하고 있다. 공무원도 트위터 ·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킹도 하고 세상읽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변화를 읽어야 생존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여유다. 공직자는 노자의 ‘도덕경’ 제15장에 나오듯이 조심하고 삼가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마치 살얼음이 언 겨울 강을 건너듯 조심하고,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듯 두려워하면서 공직의 길을 걸어야 한다. 특히 노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일이 많은 노동위원회 공무원은 항상 공정하게 일처리를 하고 구도자(求道者)로 지낼 것을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를 낭송하고 퇴임사를 마무리하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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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퇴직을 며칠 앞둔 마당에 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송별회를 꼭 하여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 직원들에게 송별회는 하겠다고 말하였지만, 반드시 저녁에 회식을 하고 서운하다고 2차로 맥주 한 잔 더 하며 노래방 가서 한 곡조 불러야 하는 것인지를 곱씹게 되었다.
사실 송별회 안 하는 일은 퇴임식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다. 식사도 같이 안 하고 떠나면 후배 공무원들이 얼마나 섭섭할 것인가. 너무 몰인정하다고 뒷소리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우연히 법정 스님의 수필 ‘아름다운 마무리’에 나오는 글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것은 삶에 새로운 향기와 빛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래, 법정스님 방식으로 송별회를 하자. 사무실에서 한 잔의 차와 과자, 과일로 조촐하게 석별의 정을 나누자. 이렇게 하면 조금 아쉬워도 국화처럼 향기로운 마무리가 되지 않겠는가.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