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문화의 재 발견

남도의 재발견- 광주일보 테마칼럼 모음, 김세곤 글

김세곤 2010. 8. 9. 07:45

남도의 재발견] 2010년과 남도역사인물    _ 광주일보 테마칼럼


2010년 01월 01일(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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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6일은 어떤 날인가?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의사 안중근이 국권 찬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에서 6발의 총알로 저격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2009년에는 뮤지컬 ‘영웅’이 공연되는 등 안중근을 기리는 많은 행사가 있었다.

희망의 새해가 밝았다. 2010년은 남도 역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새해에 기억해야 할 남도역사인물은 누구인가?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30년이 되는 해이다. 5·18민주화운동 하면 생각나는 이가 윤상원이다. 그는 시민군 대변인으로서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다가 죽었다. 또한 그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82년에 5·18 묘역에서 치러진 들풀야학 동지 박기순과의 영혼결혼식 때 부른 진혼가가 이 노래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2010년은 한일병합 100년이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는 치욕을 맞는다. 며칠 뒤 구례군 광의면에 사는 한 선비가 절명시 4수를 쓰고 자결하였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를 사죄하기라도 하듯이.

새와 짐승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이 강산 망하고 말았구나/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글 배운 사람 구실 하기 참으로 어렵구나.

그가 바로 조선의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1855-1910)이다. 그는 ‘매천야록’을 쓴 역사가이고, 의기 논개, 충정공 민영환, 한말 의병장 고광순의 충절을 읊은 시인이었다.

국치(國恥)로 황현이 목숨을 끊은 지 몇 달 뒤, 영광군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유난히 전통문화에 심취하여 문화동호인 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1년 반의 옥중 생활동안 여유당전서 등 동양사상서를 독파하였다. 해방 이후 그는 다산 정약용 연구의 태두가 되었다. 그가 한국철학의 선구자 현암 이을호(1910∼1998)이다.

그의 호남학에 대한 열정, 호남 문화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퇴직 후에도 국립광주박물관장, 다산학연구원장을 하면서 호남학 정립에 앞장섰다. 그가 남긴 ‘이을호 전집’ 아홉 권은 지금도 호남학의 바이블이다. 그는 생전에 호남학 연구재단을 못 만든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였다 한다. 그런데 호남학 연구재단 설립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경북은 한국국학진흥원을 안동에 설립하여 영남학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데 비하여, 남도는 재단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몇억 원을 마련하지 못하여 허덕이고 있다.

다시 역사의 시계를 돌려 500년 전으로 돌아가자. 1510년에 장성에서 한 선비가 태어났다. 그는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겪으면서 의로운 길을 가기 위해 자연에 묻혀 살며 후학을 키웠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절로/산 절로 물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아마도 절로 생긴 인생이라 절로 절로 늙어가리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은일의 선비로 부른 이 선비는 하서 김인후(1510∼1560)이다. 그는 도학과 문장과 절의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맑은 물에 떠 있는 부용꽃이었다. 그리고 문묘에 배향된 유일한 호남의 선비이기도 하다.

2001년 퇴계 이황(1501∼1570)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안동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그를 기리는 행사가 연이어졌다. 퇴계와 같은 시대를 살았고 퇴계에 버금가는 호남의 선비 김인후. 그의 탄생 500주년 행사가 어떻게 치러질지 궁금하다. 추모 행사야 하겠지만 매스컴과 대중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2010년은 남도 역사 문화에 있어 민주화와 인권, 한일 관계, 호남정신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해이다. 이번 주말에는 남도인물 흔적 찾기를 하련다. 광주시 광산구에 있는 윤상원 생가를 들러보고, 구례 매천사, 장성 필암서원도 다시 가보련다.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남도의 재발견] 의(義)의 길을 걷자

2010년 01월 29일(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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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대세이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순천만 갈대숲 길, 관동별곡 800리길 등 온통 길이 유행이다.

길 중에서 2009년에 가장 히트한 길은 제주도 올레길이다. 15개 코스, 269km 해안 길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대표 길이 되었다. 제주도는 올레 길 하나로 대박을 터트렸다. 제주 감귤의 상표도 올레이고 KT의 휴대폰 광고도 올레이다.

왜 이리 올레길이 인기일까. 이 길에는 치유가 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평화를 얻고 있다. 이 길에는 이벤트가 있다. 연예인 고두심, 최불암이 관광객과 같이 걷고, 소설가 조정래, 김주영이 팬들과 함께 문학을 이야기하는 등 매월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매스컴도 한 몫을 하였다. KBS ‘다큐 3일’이 방영되는 등 신문과 방송에서 앞 다투어 홍보를 하여 사람들이 더 몰리고 있다.

이렇게 길이 돈을 벌어주니 지방자치단체마다 길을 만든다고 야단이다. 전북에 순례자의 길이 만들어졌고, 광주도 무등산 옛길에 이어 생태 길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돈 많이 들여서 길을 새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있는 남도 길을 걸어 보면 어떨까.

남도의 브랜드가 무엇인가? 의향(義鄕), 예향(禮鄕), 미향(味鄕)이다. 그렇다면 남도의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의 길, 예의 길, 미의 길을 걸어보자.

우선에 의(義)의 길부터 걷자. 세상을 바르게 살려다가 화를 당한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걸어 보자. 먼 곳까지 갈 것 없고, 광주에서 가까운 화순과 담양, 장성에 그런 길이 있다.

화순에는 1519년 기묘사화의 희생자 조광조와 양팽손, 그리고 최산두의 한이 서려 있는 길이 있다. 능주면의 적려유허지는 조광조가 귀양을 와서 사약을 마시고 죽은 곳이다. 죽수서원에는 조광조와 그의 시신을 수습한 양팽손의 신위가 같이 모셔져 있다. 학포당은 양팽손이 세상과 등지고 산 곳이고, 물염정과 적벽, 그리고 도원 서원에는 최산두의 귀양살이 흔적이 남아 있다.

담양에는 소쇄원부터 시작하여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까지의 의(義)의 길이 있다. 소쇄원에는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식영정에는 동생과도 인연을 끊고 의리를 지킨 임억령이 있다. 송강정에서는 1545년 을사사화로 창평에서 살게 된 가사문학의 대가 정철을, 면앙정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한 송순을 만나게 된다.

장성에는 하서 김인후의 길이 있다. 황룡면 맥동 마을 입구의 붓바위에서 부터 백화정, 난산, 하서 묘소, 필암서원 코스가 하서 길이다. 난산은 하서와 인종 임금과의 인연이 스며있는 곳이다. 하서는 매년 7월1일 인종 기일에 난산에서 통곡하였다고 한다. 백화정에는 호남 유학자 이항과 기대승 그리고 김인후 간의 태극 논쟁 이야기가 배어있다.

이외에도 남도에는 해남, 강진, 완도, 진도 등 곳곳에 의의 길이 있다. 이런 의의 길을 걸으면서 남도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느끼자.

그런데 의의 길 걷기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자세한 안내가 그것이다. 며칠 전에 소쇄원에서 어느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소쇄원이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투덜댔다. 유인촌 장관이 좋은 곳이라고 방송에서 말하여 찾아 왔더니 집 두어 채와 대나무 숲밖에 없어, 다른 곳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에게 소쇄처사 양산보의 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제월당에 걸린 한시와 도연명의 귀거래사 글씨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더니 ‘아! 정말 그런 사연이 있네요.’하면서 자세히 둘러본다.

역사 유적도 그냥 보면 다 집이요, 정자요, 비석이다. 그러나 그 안에 스며있는 사연과 스토리를 자세히 알면 잔재미가 쏠쏠하다.

이렇듯 울림이 있는 스토리와 길 안내 지도가 담긴 팸플릿을 만들자. 그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많이 활용하자. 또한 정자에 걸린 한시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알기 쉽게 소개하자.

의(義)의 길을 걷자. 그 길에서 올곧게 살아간 남도의 선비들을 만나고 바르게 사는 길을 배우자.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남도의 재발견] 세계화와 개방화

2010년 02월 26일(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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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인물 답사를 다니고 있다. 주로 가는 곳은 서원, 사당, 정자 등이다. 그런데 애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애로는 유적지를 찾기 힘든 경우이다. 며칠 전에 임진왜란 때의 용장 황진 장군의 흔적을 찾으러 남원시 주생면에 있는 정충사를 갔다. 그런데 정충마을 입구에서 20여 분을 헤매었다. 찾아가는 길 안내 표시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남의 집까지 들어가 마을 사람에게 물은 후에야 사당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안내판이 없는 경우이다. 김굉필, 조광조, 이황, 기대승, 김성일 등의 신위를 모신 나주 경현서원을 찾아 갔을 때이다. 현장에 가니 안내판이 없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서원의 강당 이름을 본 뒤에야 확인이 됐다. 이처럼 문중에서 관리하는 서원, 사당, 정자는 안내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 번째는 서원이나 사당 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 경우다. 행주대첩의 숨은 공신이요, 화차를 발명한 변이중을 모신 장성 봉암서원을 갔을 때이다. 서원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국어와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다. 다행히 문틈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다음에는 미리 연락하고 방문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등림사도 마찬가지이다. 문무를 겸한 호방한 선비 임형수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개가 하도 짖어대는 바람에 밖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야 했다. 호남 사림의 종조 박상과 명재상 박순의 영당을 모신 송호영당은 캡스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남도에 있는 상당수의 서원, 사당은 닫혀 있는 공간이다. 물론 월봉서원처럼 출입이 자유로운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적지는 문중에서 도난 방지 등을 이유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남도의 문화유적이 닫힌 공간인데 비해 안동의 문화유적은 열린 공간이다. 작년 겨울에 퇴계 이황 묘소와 도산서원, 퇴계 종택, 그리고 퇴계 후손의 고택을 찾았다. 한나절의 짧은 답사였지만 이 답사에는 두 가지 큰 울림이 있었다. 개방화와 세계화이다.

퇴계 종택과 퇴계 후손의 고택은 관광객에게 통째로 개방돼 있다. 살림 공간은 가급적 출입을 삼가 하여 달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는 정도이고 출입이 너무나 자유롭다.

다른 하나는 세계화이다. 퇴계 종택과 퇴계 후손의 고택에는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표시된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도산서원에도 4개 국어로 된 안내판이 유적 곳곳에 세워져 있어 외국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너무나 돋보인다.

남도에서 주로 한글로 된 안내판 또는 한글과 영어로 된 안내판을 보아온 필자로서는 4개 국어로 된 안내판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답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에 모처럼 서울 문화답사를 했다. 송강 정철이 태어난 청운초등학교 근처를 갔는데 한국관광공사에서 세운 표시석 하나 있던 3년 전에 비하여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4개 국어로 적힌 정철 소개 비석이 세워져 있고, 사미인곡,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송강 가사비가 줄줄이 설치돼 있다. 역사인물 탄생 흔적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관광 상품으로 홍보하는 서울시의 문화정책이 몹시 부러웠다.

우리는 어떠한가. 1592년 5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고경명이 유팽로, 안영, 앙대박 등과 함께 회맹한 장소인 담양 추성관, 지금의 담양 동초등학교에는 호남의병의 의로운 뜻을 기리는 표시가 단 한 줄도 없다.

세계화의 흔적은 서울 문화유산 곳곳에 있다. 창경궁 관광안내 팜플렛은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가지 종류로 만들어져 있고, 국립민속박물관에도 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오디오 안내 서비스제공되고 있다.

이제 남도문화유산도 고객 친화적인 세계화와 개방화를 추진해야 한다. 문중이 관리하는 서원이나 사당도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각 문화유산마다 최소한 국어와 영어로 된 안내판이 설치돼야 한다. 그래야 광주가 명실상부하게 아시아 문화중심도시가 되고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성공할 것이다.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