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문화의 재 발견

목포의 눈물 기행

김세곤 2010. 4. 20. 06:56

 

목포의 눈물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주말에 목포를 간다. 국민가요 <목포의 눈물> 흔적을 찾아서. 목포로 가는 차 안에서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노래를 듣는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은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눈물



한 많은 아낙네의 남도창처럼 흐르는 엘레지 가락. 이난영 특유의 코 맹맹한 목소리가 더욱 구슬프다. 노래는 그녀의 가녀린 몸매만큼이나 애절하다.



이번 목포 기행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유달산과 노적봉, 삼학도와 이난영 흔적 찾기이다.



  맨 먼저 가는 곳은 유달산이다. 도착한 시간은 12시 무렵.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하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관광객이 많다. 유달산 입구에 관광버스가 여러 대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오포대를 지나서 <목포의 눈물> 노래비 (이난영 노래비)에 이른다. 거기에는 이난영이 부른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목포의 눈물>만 흘러나왔는데 지금은 목포는 항구다. 해조곡등 이난영 노래 여러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진들을 찍고 있다.


노래비에는 목포의 눈물 가사가 적혀 있고, “살아있는 보석은 눈물입니다. 남쪽 하늘 아래 꿈과 사랑의 열매를 여기 심습니다.” 라고 써 있다. 눈물이 살아 있는 보석이라.


노래비에서 목포 시가지를 내려다보니 새로 복원되었다는 삼학도가 제법 뚜렷하게 보인다. 섬 세 개 봉우리가 선명하다.


신안 비치호텔 근처 식당에서 쫄 복탕과 준치회를 먹고 삼학도를 찾았다. 삼학도는 금년 3월에 섬 모습을 되찾았다.  소삼학중삼학도가 복원되었고 바닷길이 만들어졌다. 3마리의 학이 내려앉아 섬을 이루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든 섬. 거기에는  애틋한 그 무엇이 스며 있는 듯하다.

  


  조금 있다가 대삼학도에 있는 난영 공원을 가다. 거기에는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 뒤에는 이난영의 약력이 적혀 있다. 이난영은 본명이 이옥례이다. 1916년에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북교초등학교를 중퇴하였고 1935년에 <목포의 눈물>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가 대박을 터트려 레코드판이 5만장이나 팔렸다.  단 번에  국민가수가 된 그녀는 1942년에 <목포는 항구다> 노래로  또 한 번 히트를 쳤다.


그런데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작곡가인 남편 김해송이 납북되었고 이 후  그녀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비운의 가수, 눈물의 여왕이 되어  힘들게 살다가 1965년에 세상을 떴다. 이때가 그녀의 나이 49세.


  그녀는 타향 땅 경기도 파주시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혔다가  40여년 만에 그리운 고향 목포로 돌아온다. 2006년 3월에 조성된 ‘목포의 딸 가수 이난영 공원’에 수목장으로 안장되었다.  빨갛게 백일홍 꽃이 피는 배롱나무 밑에 그녀는 잠들어 있다.


  버튼을 눌렀더니 이난영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기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니 더욱 구슬프다. 70세도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네 분이 공원 주위를 감상한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무엇을 느낄까. 향수에 젖을 까. 남도의 한을 느낄까.    


 내친김에 이난영이 살았다는 양동을 간다. 가는 길에 북교 초등학교를 보았다. 이난영이 다니다가 중퇴한 초등학교. 이 학교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다니었다.


이난영 생가 터는  정명여고 뒤편에 있다. 거기에는 이난영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난영 흉상이 세워져 있다.


 

다시 유달동에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에서 1930-40년대 목포 시가지 사진을 보았다. 삼학도 섬 3개가 뚜렷이 보인다.

 

  근대역사박물관 옆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었다. 2층에서 보니 유달산이 잘 보인다. 이난영의 노래 가락이 이곳 까지 들린다.


목포의 눈물. 이 노래처럼 브랜드 파워가 있는 대중가요도 드물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8번이면서 해태타이거즈 야구단의 응원가이기도 한 목포의 눈물. 이 노래는 몇 년 전에 평양을 갔을 때 양각도 호텔 노래방에서, 중국 단동의 북한 식당에서도 부를 수 있었다.


한과 애환이 서려있는 목포의 눈물. 목포의 눈물은 조선의 눈물이다. 눈물은 카타르시스이다. 눈물은 응어리를 풀어낸다. 정화수 역할을 한다.  75년이 넘은 지금에도 노래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가슴에 남는다. 


  광주로 돌아오는 차에서 다시 이난영의 노래를 듣는다. 삼학도, 부두의 새악시, 유달산, 목포의 설움, 목포의 눈물. 목포의 노래, 목포의 사랑.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2010.4.20 초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