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 석주 권필의 시
매화여 / 梅
매화여 / 梅
얼음처럼 맑은 뼈 / 氷骨
옥처럼 깨끗한 뺨 / 玉顋
섣달도 이제 다 가고 / 臘將盡
봄이 돌아오려 할 제 / 春欲廻
북쪽 땅은 아직도 추운데 / 北陸未暖
남쪽 가지에 홀연 꽃 피었네 / 南枝忽開
안개 낀 아침에는 빛이 가려 담담하고 / 煙朝光掩淡
달이 뜬 저녁에는 그림자가 배회하도다 / 月夕影徘徊
차가운 꽃잎은 대숲 언덕에 비스듬히 침노하고 / 冷蘂斜侵竹塢
은은한 향기가 금 술잔에 날아서 들어가누나 / 暗香飛入金罍
처음에는 잔설을 능가하는 환한 꽃빛이 사랑스러웠고 / 始憐的皪凌殘雪
다시금 푸른 이끼에 흩날려 떨어지는 꽃잎이 아까워라 / 更惜飄颻點綠苔
이에 굳센 절개가 맑은 선비에 비길 만한 줄 알겠노니 / 從知勁節可比淸士
그 높은 풍모를 말한다면 어찌 범상한 사람이리오 / 若語高標豈是凡才
은거하길 좋아하지만 그래도 시인이 보는 것 용납하고 / 愛幽獨尙容詩人看去
시끄러움을 싫어해 미친 나비 찾아오는 것은 불허하네 / 厭喧鬧不許狂蝶尋來
묻노라 묘당에 올라 솥의 음식 조미하는 것이 / 試問登廟廊而調鼎鼐者
서호 가 고산 모퉁이에 서 있는 것만 하리오 / 何似西湖之上孤山之隈
[주D-001]묘당(廟堂)에……것 : 재상이 되어 국정을 다스림을 뜻한다. 《서경(書經)》〈열명 하(說命下)〉에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국을 요리하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이 되라.〔若作和羹 爾惟鹽梅〕”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02]서호(西湖) 가 고산(孤山) : 송나라 때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서화와 시에 능하였고 특히 매화시가 유명하다. 장가를 들지 않아 자식이 없었으며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짝을 삼으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사후에 화정(和靖)이란 시호를 받았다. 《世說新語 棲逸》
부안 개암사의 홍매. 아직 꽃이 안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