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을 찾아서

KBS 1 TV 한국사 전 예고 - 1.19 토

김세곤 2008. 1. 17. 10:05

 

KBS 1 TV 에서 이번주에  송강 정철에 대한  방송을 합니다.

 

  천재 시인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 우파의 전형인 송강 정철.  정치적  타협을 모른 그에 대한 파란 만장한 삶이 방영 될 것 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제28회] 시인은 왜
             당쟁의 투사가 되었나?
                           송강 정철



▣방송 : 2008. 1. 19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정현모 PD
글,구성 : 박소희 작가
 

가사문학의 대가이자
천재 시인이었던, 송강 정철.

그러나 시인에 관한 실록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

“사독한 정철은 천고의 간흉이다.”
<선조실록 145권 中>



과연 정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피의 기축옥사.
             그 앞에 선 위관 정철.

1589년 10월. 역모가 고발된다. 조정 대신들 중에는 역모자였던 정여립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동인. 선조는 당시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에게 기축옥사의 수사를 맡기게 된다. 그로부터 1000명의 넘는 선비가 죽임을 당한 기축옥사가 시작된다.

 
“옥사가 계속해서 얽히고 뻗어가서 3년이 지나도 끝장이 나지 않아
죽은 자가 몇천명이었다.” <운암잡록 中>


지금도 계속되는 정철에 관한 원망.

혼인을 안 하고 한방에 안질 않아요. 정철이 손하고 우리 손하고는 한방에 앉질 않아.방에 갔다가 정철이 손이 있으면 그 방에 앉덜 않고 나와버려.”
                                                                <광산 이씨 후손 인터뷰 中>

전라도 나주 지역의 광산 이씨 집안. 200여년 전까지 그들은 성씨를 바꾼 채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후손들은 정철의 후손과 왕래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철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을까?

기축옥사 당시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은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기축옥사 때 멸족 당한 이발의 집안. 사람들은 옥사를 이용해 정철이 개인적인 복수를 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


<기축옥사 당시 억울한 죽음을 당한
호남 선비들의 위패>

"정철이 항상 불평불만을 품고 있었는데,역적의 변이 신하들 사이에서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스스로 오늘이야말로 내 뜻을 이룰 수 있는 날이라 여겨 자신이 신문하는 관원이되어 일망타진 할 계책을 세웠습니다."
                       <선조실록 84권 中
>

 

선조에게 버림받는 정철.

정철을 위관으로 등용. 옥사를 다스린 선조. 기축옥사는 선조의 지시로 이루어진 대규모 참사였다. 그러나 선조는 기축옥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철을 파직 한다. 정철이 물러간 뒤 선조는 기축옥사의 모든 책임을 정철에게 돌린다. 정철을 이용해 동인의 힘을 눌렀던 선조. 이후 선조는 서인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다시 동인을 등용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철은 선조에게 철저히 버림받는다.

“정철의 일을 말하면 입이 더러워질 듯하니 방치하는 것이 옳다. ”
                                                                                             <선조실록 54권>


<선조가 정철에게 하사한 은잔>


광기의 역사 속에서 꽃피운 송강의 문학.

천재 시인 정철이 살다간 16세기는 광기어린 시대였다. 수차례의 사화와 전쟁이 있던 시대. 그러나 그러한 시대와 정철의 천부적인 재능이 만나, 수 많은 작품이 탄생 한다. 처절한 역사가 있었기에 탄생될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의 문학 속에서 나오는 연모의 대상은 언제나 임금 선조였다.
격랑의 시대 속에서 천재 시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살다간 송강 정철. 기축옥사 이후에도 유배와 정치적 복귀를 반복하던 그는 강화도 송정촌에서 쉰여덟의 나이로 굴곡 많았던 인생을 마감한다.

 
            <송강가사에 나오는 ‘님’>                <정철이 유배지에서 읽은 책의
                                                                 횟수를 표시한 흔적>

“(정철의) 청렴하고 담백한 성격이 인간을 향한 애정, 인간에 대한 겸허함으로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치하고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죠. 타협과 관용이라는 게 존재해야하는데, 한번 틀어지면 다시는 화해할 줄 모르는 몰랐잖아요. 시인으로만 남았다면, 참 아름다운 분인데, 그래서 그게 참 서운한 게 있어요."
                                                                   <이종범 교수 인터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