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련 글들
남북 경협 , 프로그램적 접근
김세곤
2007. 8. 22. 05:10
[중앙시평] 남북 경협, 프로그램으로 접근하자 [중앙일보]
그동안 대북사업으로 돈 번 기업은 거의 없다. 그래서 착수했던 연구였다. 어떻게 하면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돈 벌려면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한다니! 그 다음에도 대북 투자 7계명은 ‘신중해라’ ‘기다려라’ 등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북경협의 실상이다. 지난해 남북 교역은 사상 최대인 13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상업적으로 교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중 40% 정도에 불과하다. 대북 지원 물자라든가 개성공단 부지 공사용 중장비 같은 것들조차 통계로 잡기 때문에 금액이 커졌을 뿐이다. 결국 절반이 넘는 교역은 실제론 돈 주고 거래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뿐만 아니라 수년째 지속되는 현상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교역이 증가하려면 많이 사오거나 팔아야 한다. 그런데 사오자니 살 만한 제품이 없다. 품질이 조악하기 때문이다. 일부 농수산물이나 광물처럼 자연에서 절로 나는 상품 외엔 경쟁력이 없다. 그나마 물류비가 워낙 높아 채산이 맞지 않는다. 팔기란 더 어렵다. 북한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좀 생겨도 값싼 중국산을 수입한다. 양이 문제지 질을 따질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꾸준히 교역하는 업체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투자는 더욱 어렵다. 인프라는커녕 허허벌판이고 리스크도 크다. 내수시장도 없다. 부자재를 조달할 수 없어 옷 공장을 하려면 바늘·실·가위·단추까지 들고 가야 한다. 그만큼 비용이 커진다. 노동력이 싸다지만 내 맘대로 고용도 해고도 하지 못한다. 투자를 지원처럼 여기는 ‘대남(對南) 일꾼’들은 이런저런 뒷돈과 사례를 요구한다. 내 공장이라도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다. 전화도 안 되고 요즘 세상에 e-메일도 안 된다. 돈 벌려고 한 투자가 오히려 애물단지로 변하는 것이 다반사다. 본전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는 기업들의 속내가 쉽사리 이해된다. 결국 교역이 증가하려면 북한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사올 물건도 생기고, 파는 것도 가능해진다. 투자를 위해서는 북한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개방·개혁으로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만 대북 진출이 늘어난다. 그래서 정부가 필요하다. 북한 경제 발전이나 개방·개혁 유도를 일개 기업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대북정책 초점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은 정부조차 기업처럼 프로젝트 단위의 사업에 매달려 왔다. 경의선·동해선 연결이나 경공업 원자재 제공과 같은 일개 프로젝트로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기란 무리고, 개방·개혁의 촉진에도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도 경제성 있는 프로젝트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의 대북정책이 ‘퍼주기’ 비난을 받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프로젝트 접근의 속성상 성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프로그램으로 가야 한다. 종합적인 패키지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너지를 제공한다면 근처 공장들의 설비 개·보수 사업과 연결하고, 그 공장들을 우리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고용은 물론 통신·운송 등의 문제까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경제성도 있다. 일련의 계획을 우리가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 남북경협에서 우리의 비교우위는 자본과 기술에 있지 않다. 자본이나 기술은 북한이 필요하다면 중국에서도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비교우위는 개발 경험에 있다. 이제는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연기됐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다행한 일이다. 이젠 프로젝트를 찾지 말고, 시간을 번 만큼 프로그램을 짜 보자. 그래야만 ‘또 평양회담’이 ‘또 퍼주기’를 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