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 4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면앙정에서 (4)
김세곤 (노동부 부이사관)
면앙정부 俛仰亭賦는 1576년 임제의 나이 27세에 지어진 것이다. 면앙집 제3권에 보면 84세의 송순은 1576년 (병자년) 5월18일에 임제에게 부를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6일에 임제에게 글을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답장을 쓴다.
백호 白湖 임제 林悌(1549 명종4년-1587 선조 20년). 그는 39세의 나이에 요절한 조선 최고의 풍류객이다. 무인인 그는 나이 35세 때 평안도 도사(종6품)로 부임하면서 송도의 황진이의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 올리고 제 지내며 추도시를 읊었다 하여 조정으로부터 파직을 당한 로맨티스트.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시조를 양반 신분에 당시에 천시 받던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고 읊었으니 자유분방함이 가히 풍류객답다.
임제는 전라도 나주시 회진면 사람으로서 자는 자순 子順이고 호는 백호 白湖인데 어렸을 때는 규방 출입등을 하다가 나이 20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29세에야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기개 있는 풍류객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서분당의 무리에서 초탈하여 굽혀서 남을 섬기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왕따를 당하였다. 어느 한편에 가담하여야 살아남고 출세할 수 있었던 시절에 어느 무리에 구속당하기를 싫어했으니 소외될 수밖에. 또한 그는 격식과 현실에 비판적이어서 당시에 미치광이라고 회자되기도 하였다.
( 그가 지은 <면앙정부>는 그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지은 것인데 여기에도 임제가 왕따 당한 상황이 나온다. “임제(林悌)는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주점에서 이름을 감추었네. 우스운 것은, 세상 사람들은 기상이 높은 나를 미치광이라고 하네. “)
대곡선생 성운의 제자로 알려져 있는 임제는 면앙정 송순의 제자이기도 한데 그는 무인으로서 칼과 거문고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호방함을 보여 그가 다니는 곳에는 여인과의 일화가 뒤따랐다.
(자세한 것은 졸고 ‘남도문화의 향기에 취하여(뉴스투데이, 2006)’를 보시기 바람)
이제 면앙정부 俛仰亭賦를 보도록 하자
면앙정부
큰 고을은 남쪽에 놓여 있고
넓은 들판은 동쪽으로 펼쳐 있네.
용이 서려 있는 일곱 굽이요
선천적으로 아늑한 한 마을이었네
경치가 세상에 빼어난 별유천지요
바람과 달은 천만년 한가로웠네.
속인들의 발자취 몇 번이나 올라와 왔으련만
늙은 임의 눈에 보였네.
어린 시절부터 고기 잡고 놀았던 곳
안개 속에 고결하게 보였네.
숲 우거진 언덕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이내 몸 늙어서 다시 돌아와 이곳에 머물리라.”
처음 곽씨의 꿈은 헛되었고,
잡목만 거칠게 터는 폐허가 되었네.
훌륭한 경치는 감춘 채 드러내지 않고,
나무꾼의 노래와 목동의 피리 부는 곳이었네
이상한 꿈은 은자(隱者) 때문에 끝이 나고,
한가한 구름은 벌써 신선을 기다리네.
인품은 맑고 경관도 고요하니.
두 가지 아름다움 모두 다 합해졌네.
뜻은 비록 유안(幼安 ; 후한 때 처사인 관령 管寧의 자)을
사모했으나,
명망은 안석(安石: 진나라 사안석 謝安石을 이름) 보다 정중했네.
조정에 나아가서 일 하시니
학들이 임의 가심을 아쉬워하였네.
학이 찾아와 노래하니
꽃도 좋고 대나무도 좋아.
거북이 꾀를 어찌 빌릴손가.
날아가는 새 모습을 빨리 구상하였네.
지어진 정자의 모습은 사치와 검소의 중간이고
유람객들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다 보았다네.
난간에서는 갖가지 형상 다 펼쳐있고
자리에서는 천리풍경이 바라보이네.
한번 굽어보고 한번 우러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도다.
북쪽으로 멀리 허공을 바라보니,
추월산 봉우리에 가을달이 비치고.
안개가 거쳤다가 다시 끼니
아침저녁으로 수시 변한 모습이로세.
서울과 소식이 막힌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임금을 생각하니 옥 같은 모습일거야.
벼슬길에 오른 것에 대하여 그윽한 회포를 일으키고,
은자 隱者를 부르는 노래 한 곡조를 읊조렸네.
남쪽을 바라보니 아스라하고
들판은 넓고 하늘은 나지막하구나.
여울물은 아득하고 아득한데
풀빛은 푸르름이 희미해지는 구나.
스님이 돌아갈 제 석양이 저물어가니
먼 산에 저녁노을 분명히 그어있네
따뜻한 태양은 처음으로 돌아왔건만
겨울눈은 아직도 두텁게 쌓여 있네.
향기는 산비탈에 차가운데
매화에서 봄소식이 새어나오는가.
작설차를 마시면서 거문고를 퉁기고
유란곡을 연주하지만 그 소리 아는 이 없구나.
청려장 짚고서 오고 갈 제
날마다 동풍이 불어오네.
버들은 찡그린 듯 푸름이 번성하고,
꽃은 웃는 듯 붉은 빛을 재촉하네.
꽃송이 꺾어 허리에 차고
산언덕에 외로이 서 있었네.
새는 속절없이 울고 꽃향기 다하였으니
애달프다 화사한 꽃 얼마나 갈 것인가
쇠잔한 봄은 한 바탕 꿈같은데,
비바람이 배꽃을 때리는구나.
또, 그늘이 무성하니 물가가 숨어 버렸고
서리 조금 내렸는데 나뭇잎은 붉게 물들었네.
넘치던 물 떨어져 가을 물 차갑고
구름이 걷히니 하늘이 맑도다.
반악의 희끗한 귀밑머리 어찌 슬퍼하리오.
(역자 주: 반악은 동진의 문인으로서 용모가 아름다워 낙양의 거리를 수레를
타고 지나가면 부녀자들이 그에게 귤을 던져 수레에 가득하였다한다.)
송옥(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제자)의 수심을 나는 하지 않으리.
술동이를 열어놓고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
달과 더불어 기약이 있겠지.
은하수는 맑고 별빛은 저문데,
기러기 울음소리 서글프게 들려온다.
밤은 차츰 깊어가고 이슬은 떨어지니
신선이 사는 열두 요대처럼 황홀하여라.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 향기를 맡으며,
도연명의 맑은 기풍을 생각하노라.
가을 소리 적막하니,
뜰에는 오동잎이 가득하다.
간혹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 하여 이상한 것 같고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니 주렴을 길게 거두었네,
구경할 만한 경치가 많기도 많다.
잠깐 사이에 내린 소나기는 분명 궁중군대(우림)의 창과 같고,
만길 되는 무지개는 여와씨의 돌을 방불하게 하는구나.
절간의 종소리 멀리 들려올 제
앞산에 노을이 어둑어둑
아침 창문에 새 우는데 차가운 숲에는 햇살이 밝구나.
그윽한 일 또한 즐길만 하니
한 그루 구붕정한 소나무 아래 앉아서 노닐고
나라를 근심하며 풍년 들기를 기대하노니
온 들녘에 누런 곡식을 즐거이 바라보누나.
악앙루는 보이지 않고, 등왕각은 이름만 들었는데
오직 이 정자 홀로 호남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었네.
악앙루기를 지은 범희문(范希文)은 떠나간지 오래고
등왕각서를 지은 왕발은 다시 불러올 수 없도다.
주인 어른의
강호에서 지내면서 펼친 풍류와 경륜
한 조각 충성된 마음으로 세 분 임금을 모신 백발노인이네.
옛날 강태공이 늙어서 출세함을 생각하면
국가를 도모하는 일에 어찌 조금이라도 흔들리겠는가?
무릇 많은 인재가 조정에 가득하다 하더라도,
속세와의 초연한 맹세를 저버리기 어려우리.
푸른 산이 우리 님을 저버리지 않았기에
사직하는 글 조정에 던지시었지.
욕심이 없기는 한운(漢雲)과 같았기에
물고기와 새도 벼슬하신 분을 의심하지 않는구나.
정자의 모습은 변하지 않고, 풍경도 그대로일세.
수건을 질끈 매고 농군의 옷을 입고서
휘파람 불며 한가로이 서성이니
사안석처럼 풍악을 울리면서 공북해와 같이 손님을 맞이하네.
이 정자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이 정자에서 머리 숙여 땅을 보니 이 산정에서의 삶이 더 없이 좋구나.
이 정자에서 바람을 쏘이고 이 정자에서 달을 구경하니
한 푼의 돈도 들일 것이 없구나.
학의 모습처럼 더욱 깔끔하고 소나무 그림자처럼 건장하도다.
자하주(붉은 안개 빛 술) 마시면서 세월을 머무르게 하고,
신선을 초청하여 함께 어울리네.
임제(林悌)는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주점에서 이름을 감추었네.
우스운 것은, 세상 사람들은 기상이 높은 나를 미치광이라고 하네.
매양 달 밝은 밤이면 그 노래를 읊조리며
이 몸도 임의 곁으로 가고 싶은 게 소원이었소.
다행히 면앙 선생을 한번 찾아뵙게 되어
나의 많은 빚을 갚게 되었도다.
가냘픈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휘파람 불며 외로운 등잔 아래 이별하였네.
산중에서 거처로 돌아오니 생각이 떠올라서
하루 밤에도 아홉 차례나 혼이 따라갔다오.
면앙 공으로부터 부賦를 지으라는 부탁은 받았으나,
나 이제 미사여구로 문장이나 꾸미는 보잘것없는 재주이로세.
그러나 부탁하신 공의 뜻을 저버리기 어려운 터이라
지금 부득히 이 글을 짓노라.
아아 ! 사람들은 인정에 이끌려 바깥으로 치닫고
세상의 눈은 명리로만 빠지는 데
쳐다보고 굽어보는 사이에서
공(公)은 홀로 즐거움이 있도다.
인간의 삶은 하늘과 땅과 함께 삼재三才 라고 한다네.
마음은 허령 虛靈하여 온갖 이치가 모두 갖추었거늘
이제 돌아감에 하늘은 높고 땅은 넓은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상쾌하도다.
이 좋은 경치가 면앙공의 뜻에 어김이 있겠는가?
우러러보아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하리.
나 누구와 함께 돌아갈 것인가?
진실로 이런 분과 같이 노닐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