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기행 5 -국내성 (집안시)
통구하 강
일찌기 조선상고사를 쓴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 책 총설에서 " 집안현을 한 번 봄이 김부식의 고구려사를 만 번 읽는 것 보다 낫다" 라고 하였다. 중국 길림성 압록강변에 있는 집안시는 고구려 고분들의 집합체이다. 곳곳에 무덤들이 늘어서 있다.
국내성은 집안현의 도심안에 있는 궁성이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서 성곽이 많이 훼손 상태이다.
국내성은 2대왕 유리왕 22년 (기원후 3년)에 세운 궁성이다. 산성은 환도산성이고 집안시에서 북쪽으로 2.5 Km 지점에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에는 국내성 천도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가서 잡으러 갔는 데
잡은 곳이 바로 국내 위나암이었단다. 둘러보니 지세가 좋아서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천도하였다 한다.
한편 국내성은 압록강 변에 있다. 바로 앞이 북한의 만포시이다. 이곳은 다리가 놓여져서 북중이 통행도 한다.
고구려는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까지 이 곳 국내성에서 424년 동안 지낸다.
그러므로 이곳은 온통 고구려 왕릉과 귀족 무덤들이 가득하다.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장군총도 이곳에 있다.
제 2화 집안시 국내성
이제 우리 일행은 오녀산성을 뒤로 하고 서둘러서 길림성 집안시로 향한다. 오후에 국내성과 장군총, 광개토대왕비등을 보고 통화에서 백두산 가는 밤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2시간 30분 정도를 가니 집안시가 나온다. 집안시는 압록강 중류의 통구분지에 자라잡고 있고 북한 만포시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용산(용산), 북쪽에 우산(우산)이 서쪽에는 통구하 강을 건너 칠성산이 자리 잡고 있고, 앞에는 압록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천혜의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리왕은 재위 22년 (서기 3년)에 환인의 오녀산성에서 이곳 집안의 국내성으로 천도를 한다.
유리왕은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결혼 한 예씨 부인에게서 난 아들이다.
유리왕이 태자로 책봉되자, 소서노는 전실 소생인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하하여 비류국을 세운다.
유리왕이 도읍지를 옮긴 것은 졸본 부여 호족들과의 결별도 되며,
국력이 커져서 오녀산성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더욱 평탄한 지역이 필요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국내성 천도에 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을 가서 그 돼지를 잡으러 갔는데 돼지를 잡은 곳이 바로 국내 위나암 이었단다. 둘러보니 지세가 좋고 주변도 평평하여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한다.”
집을 나타내는 가(家)란 한자는 돼지를 나타내는 시(豕)와 집의 지붕을 나타내는 면(?)을 합한 글자이다. 돼지가 있으면 뱀과 같이 사람을 해치는 동물이 근접하지 못한다 한다. 때문에 돼지를 집 주변에 많이 길러 집 가 家 한자가 생긴 것이다. 유리왕이 국내성 천도의 근거로서 돼지 이야기를 만든 것은 국내성이 그만큼 살기 좋은 곳임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집안시에 들어오면서 안내원은 우리에게 밭에 즐비한 고분들을 보라고 말하여 준다. 집안시는 고구려 고분의 집합소이다. 고분이 13,000개 정도이고 지금 남아 있는 것도 7600개 정도이며 왕릉급이 42개라고 관광 안내원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미천왕의 고분과, 고국양왕의 고분인 천추묘를 알려준다. 이 고분들은 1,600년이 지났으나 그런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집안시를 비롯한 백두산 일대가 청나라의 발상지라 하여 청나라 시대에 200 여 년 동안이나 사람 출입이 금지된 덕을 톡톡히 입고 있다. 실제로 100여 년 전에 일본의 만주 침략 시 일본인 군인 사카와가 집안에서 광개토왕비를 발견할 때에는 집안현은 20호 정도의 민가가 있었다 한다.
4시 경에 버스는 시내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보이는 곳이 고구려 유지(遺趾)공원. 이곳은 예전에는 집안시청이었단다. 중국 집안시에서 고구려 유적을 찾으려고 시청을 헐었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한다.
우리 일행은 <문화로>라고 표시된 길을 따라서 국내성 북쪽 벽으로 간다. 20만명이 넘은 도시인 집안 시내는 온통 아파트로 들어차 있다. 국내성터가 남아 있는 곳곳에 아파트 건물이다. 성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지성으로서 각 성벽은 동벽 554미터 서벽 664미터 남벽 751미터 북벽 715미터로서 총길이는 2686미터란다. 선은 많이 허물어져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성터는 2004.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내성터는 유벅이 보존되고 성 안의 아파트 신축이 전면 금지되었다.
우리는 북쪽 성벽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성터의 흔적을 본다. 그 옆에는 강이 하나 흐르고 있다. 이 강이 통구하란다. 그리고 여기에서 2.5 Km 북쪽이 환도산성(산성자산성)있다고 설명한다. 국내성은 평지 궁성이고 환도산성은 산성으로서, 고구려는 평지성과 산성 체계를 갖추고 전쟁등 위급시는 산성으로 피난을 갔다 한다.
(2007.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