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 동북공정

신 열하일기 3

김세곤 2007. 4. 28. 19:38
[새 연재 | 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압록강 건넌 지 사흘, 이 문에 한 발자국 옮기면 중국 땅이다”
 

압록강 철교와 단교 저편이 단둥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연암은 요동벌로 들어섰다. 요동벌은 ‘요양에서 산해관까지 1200리 길이 들과 하늘이 맞붙은 땅’이다. 7월8일 그는 냉정(冷井)을 지나 어느 산기슭을 돌아서면서 일망무제의 요동벌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 참 좋은 울음 터로다. 한번 소리쳐 울 만하구나” 하고 소리쳤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휘돌아보면서 본시 사람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양(瀋陽·선양)과 산해관(山海關·산하이관)을 거쳐 마침내 북경(北京·베이징)에 입성했다. 8월4일, 연암은 그토록 그리던 유리창(琉璃廠), 그 27만칸이나 되는 빽빽한 골동품 점포들을 보면서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 것은 여한이 없는 일”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이튿날, 건륭의 부름을 받아 사절단 일행이 열하로 떠나게 되었을 때, 인원 제한으로 그만 장복이를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열하로 가는 말 위에서 연암은 “인간으로 가장 괴로운 것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 괴로운 것은 생이별”이라며 울부짖었다.

연암의 뜨거운 가슴은 식을 줄 몰랐다. 8월7일, 벌써 사흘이나 뜬눈으로 달리면서 고북구(古北口)를 밤중에 통과하는데, 불현듯 거기 만리장성의 벽면에다 자기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 거기 하얀 바위에 이름을 새기듯. 연암은 칼을 뽑아 벽돌에 낀 이끼를 긁고 벼루에 술을 부어 찬 이슬 내리는 첫새벽에 먹을 듬뿍 찍어 발랐다.

다시 재를 넘어 아슬아슬 백하(白河)를 아홉 번이나 건너는 이른바 ‘일야구도하(一夜九渡河)’ 대장정을 펼칠 때, 그 미끄러운 이끼에 말 배때기까지 물이 넘실거렸다. 이때 연암은 말을 모는 데 여덟 가지 위험이 있노라 경고했다. 그 내용이란 모두 말과 마부, 그리고 말을 탄 이의 안전을 위한 사랑의 연결이요 실천이었다.

이튿날, 드디어 열하를 눈앞에 둔 합라하(哈喇河)를 건넜다. 모두 기진맥진이다. 창대는 잠꼬대를 했다. 춥고 배가 고팠던 게다. 연암은 흰 담요를 꺼내 창대의 전신을 감싸고 다시 띠로 꽁꽁 동여매 먼저 호송시켰다. 연암은 이러했다. 어찌 안 좋아할 수 있나. 먼저 그 마음이 뜨거웠기에 평등과 풍요가 눈에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서둘러 凍土를 찾은 까닭

만주(滿洲)는 벌써 겨울이었다. 이 추위에 ‘열하일기’의 기점인 중국 구련성(九連城)으로 달려온 데는 미룰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학계와 언론엔 ‘열하일기’ 붐이 일고 있다. 일찍이 창강 김택영(金澤榮)이 ‘5000년째 최고의 문장가’로 추앙한 데 이어 요즘 논자는 연암을 ‘한국의 셰익스피어’로 치켜세운다. 적어도 ‘열하일기’가 ‘한국 최고의 기행문학’임에는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다만 기행문학의 문화적 가치나 연암의 천재적 문장력이 재평가됨은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지거나 사실과 달리 굴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상전벽해가 되고 있다. 산업화에 따라 어제의 중국이 매일같이 허물을 벗고, 패권화에 따라 어제의 외국이 소수민족으로 편입되면서 역사조차 새로 씌어지고 있다.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는 국토 개발에, 역사 통일의 작업이 개혁 개방의 획기적인 물결을 타고 전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220여 년 전 연암의 역사 인식과 영토 의식을 통해 조선 중엽 우리 조상의 인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늘을 위한 재점검일 수도 있다.

요컨대 그때 연암이 앞에는 창대, 뒤로는 장복을 거느리고 성큼성큼, 껑충껑충 지나던 ‘열하 여행 노정’ 3000리 연행길이 아직 건재할까. 연암의 눈에 그토록 신선했던 풍물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연암뿐 아니라 홍대용,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등 실학파 거장들의 발자국이 찍힌 길, 그 길은 우리 역사의 숨통이 트인 길이자 고구려의 빨간 깃발이 펄럭이던 곳이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동토(凍土)를 찾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