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기행

평양을 간다 1 - 설레임

김세곤 2007. 4. 28. 09:29

 

 

  평양을 간다.

                       

1. 연재를 시작하면서 , 설레임 -평양을 간다.


  평양을 간다. 3.22-3.25부터 4일간 평양을 간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현대화사업 참관단으로 평양을 가게 되었다. 북한의 수도, 정식으로 말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인 평양을 방문 하게 되니 가기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평양 平壤. “평평한 토양의 땅” 이라는 말 그대로  높은 산이 없이 벌판이 넓은 벌판이 쭉 퍼져 있고  대동강을 사이에 끼고 있는 단군 왕검, 고구려의  옛 도읍지. 그 옛날에는 서쪽의 중심지라 하여 서경 西京이라 하였고,  대동강 변에 버드나무가 많다 하여 류경 柳京으로도 불린 곳이 평양이다.

  

평양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 오른 단어는  대동강, 평양성 그리고 평양감사와 평양기생이다.


그래, 대동강은  평양의 상징이요, 젖줄이다. 강 이름도 “모두 함께 대동단결하자”는 의미의 대동강 大同江은 평양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마치 한강이 서울을, 세느강이 프랑스 파리를,  템즈강이 영국의 런던을 가로지르고 있듯이.


대동강 이름을 들먹이니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릴 때 불러 본적이 있는 “한 많은 대동강아 ” 노래가 생각난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 ~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아 ~ ~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남북 분단, 6.25 전쟁의 참화로 이제는 갈 수 없는 북녘 땅 평양을 그리는 이 노래가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내가 반공 교육을 빡 세게 받고 살아온 세대이어서 일까, 아니면  북녘 땅을 그리는 실향민의 한을  이 노래에서 느껴서 일까.

 

이  노래가사에는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등 대동강가의 명소가 다 나온다.

그리고 서도 사람들의 한을 노래한 수심가 愁心歌도 등장한다.


대동강 이야기를 하니 두 번째로 생각나는 것이 고려 때 정지상이 쓴 시 “송인” 이요,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김관호의 나체 그림 “해질녘”이다.


내 머릿속에  평양 하면 생각나는 것이 두 번째 단어는 평양성 平壤城이다. 평양은 단군 왕검성이 있는 곳으로서 우리민족의 시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광활한 영토와 상무정신이 드높았던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427년에 평양 천도를 한 이래  영양왕과 연개소문이 수나라 당나라를 물리친 고장이다. 고려 때는 실패한 개혁가 묘청이 서경 천도를 하려 한 곳이기도 하여 그 후 평안도 사람들 소위 서도 사람들은 이후 천대를 받기도 하였지만,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평양성 탈환의 역사가 있다. 이 평양성 탈환에 공헌한 평양기생 계월향과 김응서 장군의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을 가면 평양성의 내 ․ 외성을 둘러 볼 수 있으리라. 곁들어서  MBC 인기 드라마 <주몽>의 출연진이 들렀다는 <동명왕릉>을 볼 수 있고, <단군릉>도 볼 수 있으리라.


  

 세 번째로 평양 하면 생각나는 것은 ‘평양감사도 자기하기 싫으면 안한다.’는 말이다. 8도 감사 중에서 얼마나 최고로 좋았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평양감사가 8도 감사 중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이유는 다음 3가지이라 한다. 먼저 평안 감사는  조정에서 할당 된 일정량의 세금만 갔다 바치면 나머지는 감사가 알아서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지방지치제 같은 것인데 평양에는 중국 사신들 손님들이 많아 평양감사가 부담하는 접대비용도 만만하지 않아서 조정에서 이렇게 재량을 주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평양은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중국 사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 무역 거래할 물건도 많아 돈이 흥청거렸다 한다.

마지막으로 평양은 기생이 가장 예뻤다 한다. 그래서  평양을 색향이라고도 하였다 하는 데 이 기생들을 평안 감사가 관장을 하였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한편 모란봉 언덕 아래 칠성문 밖에는  평양 기생들의 공동묘지인 선연동 嬋娟洞이 있다. 권필 같은 조선의 대 시인도 이에 대한 시를 쓰고 있을 정도이니 평양 기생하고 한번 노는 것은  뭇  선비들의 소원이었으리라.


선연동


거칠은 무덤에도 해마다 봄빛은 찾아와

꽃으로 단장하고 풀로 치마 둘렀네.

이 많은 꽃다운 혼들 아직 흩어지지 않고

오늘도 비되고 구름이 되네.


 

 자, 이제 평양을 간다. 나는 그곳에서 평양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향기에 흠뻑 빠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