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여수
장보고와 이순신의 나라
김세곤
2007. 4. 14. 06:45
[정진홍의소프트파워] 장보고와 이순신의 나라 [중앙일보]
하지만 그간 우리는 명당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몰랐다. 명당의 가치를 살리려면 바다를 바라보고 해양으로 나아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줄곧 대륙만 쳐다보다 신세를 망쳤다. 그나마 고구려 시대에 대륙으로 나아가 그 위세를 떨친 바도 없진 않았지만 고구려 멸망 후 지난 1300여 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한반도에 갇혀 산 역사였다. 우리는 더 이상 고주몽과 연개소문의 나라가 아니다. 고주몽과 연개소문을 그리워해도 소용없다. 대륙의 장벽은 그 시절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옹골지다. 곧장 타고 넘으려면 손실이 너무 크다. 대륙으로 나아가고자 하더라도 슬기롭게 우회해야 한다. 어디로? 해양으로 말이다. 우리 역사를 상고해 보면 대륙으로 나아가서 득 본 일이 별반 없다. 반면에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해양으로 뻗어나간 덕분에 이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5000년 묵은 때 같던 가난을 물리쳤고 세계 열한 번째 경제대국이 되었다. 지난해 3000억 달러 수출의 금자탑도 해양으로 나아간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나라는 고주몽과 연개소문의 나라이기보다 오히려 장보고와 이순신의 나라다. 장보고는 1200여 년 전 완도 청해진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주름잡은 해상왕이다. 대륙에 기대 사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숙명처럼 여기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장보고는 '미천한 해도인(海島人)'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다로 나가고 해양으로 뻗어가야 명당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오늘과 내일의 관점에서 보면 장보고야말로 우리가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증명해 준 '위대한 선구자'임에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이순신은 왜적의 침입으로 함몰돼 가던 나라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1592년 임진년. 왜군이 상륙 하루 만인 4월 14일(음력) 부산성을 유린했다. 그들은 그 여세를 몰아 동래성을 점령한 다음, 세 갈래 길로 밀물처럼 북상했다. 이에 놀란 선조는 결국 보름 뒤 의주로 몽진(蒙塵)을 떠났다. 7년여의 전쟁 동안 나라는 절단 나고 백성은 피폐했다. 호남을 제외한 전 국토가 유린당했지만 그 전란의 참화 속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바다 위의 이순신'이었다. 이순신과 바다가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다. 자고로 대륙에서 흥기했던 나라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의 왕조는 길어야 200~300년에 불과했다. 칭기즈칸의 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면에 바다를 끼고 해양으로 나아간 나라들은 오래도록 번성해 새로운 문명을 이뤄냈다. 로마와 영국이 그러했다. 특히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머물지 않고 지중해로 나아갔기에 로마라는 이름을 굵고 진하게 역사에 새길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는 반드시 개최해야 할 당위와 명분이 있다. 여수 세계박람회는 우리가 '장보고와 이순신의 나라'임을 재천명하며 또 한번 바다로, 해양으로 치고 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3의 개국이라 일컬어지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걸맞게 한반도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대양으로 나아가는 용이 돼야 한다. 정진홍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