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2007. 4. 11. 04:05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7)


이어서 가사는 긴 밤으로 이어진다.

 

짧은 해 쉽게 지니 긴 밤을 곧추앉아

청등 걸은 곁에 전공후 놓아두고


청등은 임이 오시라고 켜 놓은 등불이다.

그리고 그 곁에 전공후를 놓아둔다. 하프와 비슷한 전공후는 고조선 때부터 여인들이 즐겨 키는 악기였다. 전공후와 관련된 노래로서 고조선(古朝鮮) 시절 곽리자고의 처 여옥이 불렀다는 <공후인곡>이 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기어이 물을 건너시네

물에 휩쓸려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찌 할꼬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河


  이 시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불렀다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이다. 뱃사공 곽리자고는 뱃머리에서 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때 머리가 허연 미치광이(백수광부)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강물로 뛰어 들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를 뒤따르며 말렸으나 그는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너무나 서러워서 <공무도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도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슬픈 장면을 본 곽리자고는 자기 아내 여옥에게 이런 사연을 이야기 하고 백수광부가 부른 노래를 불러 주었다. 여옥은 슬프게 공후를 뜯으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이후 여옥은 이웃에 사는 여용에게 이 노래를 전하였고, 이 노래는 사람들에게 널리 불리어지면서 <공후인곡>이 되었다.


꿈에나 임을 보려 턱 받치고 기대니

앙금 이불도 차디차다 이 밤은 언제 샐꼬.


  원앙금은 원앙새를 수놓은 부부가 함께 덮는 비단 이불을 말한다. 그리고 다정한 부부를 원앙부부라 한다. 암수가 다정하여 금슬이 좋다는 원앙새의 ‘원’은 수원앙이요, ‘앙’은 암원앙이다. 임 없이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이불은 암원앙만 수놓은 이불이다. ‘앙금도 차도 찰사’라고 일부러 원앙 이불 대신 암 원앙만 있는 이불로 표현하는 송강의 글 솜씨에서 여인의 독수공방은 더욱 애절하다.


  한편 암원앙에 관한 시도 있다. 정철보다 반세기 이후에 태어난 시인 이정보의 시가 그것이다.


꿈에 임을 보려 베개 위에 의지하니

반벽 잔등에 앙금도 차고 차다

밤중만 외기러기 소리에 잠 못 이뤄 하노라.


  어느덧 사미인곡 가사는 마지막으로 접어든다.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져근덧 생각마라          이 시름 잊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어         골수에 사무치니

편작이 열이 오나         이 병을 어찌 하리

어와  내 병이야          이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싀어디여          범나비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데 족족 안니다가

향 묻은 날애로           임의 옷에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임 조츠러 하노라.


  여인은 하루에도 열두 때 한 달에도 서른 날 잠시도 임 생각을 안 한 적이 없다. 여인은 결국 편작과 같은 명의(名醫)가 열 사람이 넘게 와도 못 고칠 병, 즉 상사병에 걸린다. 아아, 이 못 고칠 병은 순전히 임을 못 보고, 임을 사랑을 못 받은 탓이다. 차라리 죽자. 그리고 범나비가 되오리다.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임과의 사랑을 저 세상에서 가서라도 이루고 싶은 애절한 심정이 여인을 범나비로 만든다.

  

  그리고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 쪽쪽 앉았다가 향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이 나비는 그냥 임의 옷에 앉는 것이 아니라 향기 나는 날개로 앉겠다고 한다. 향기 나는 나비. 그 나비는 단장한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저승에서도 유혹하는 요염한 모습으로 임에게 다가서고 싶어 한다.


이제 사미인곡은 이렇게 끝맺는다.


‘님이야 날인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임이 나를 알지 못하여도, 임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임이 나를 안 찾아와도 나는 내 님을 영원히 좇으리라. 그야말로 임 향한 일편단심이다. 변함없이 임을 사랑하는 마음. 이 마음이 송강이 선조임금에 대한 충성이다. 일편단심 연군지정이다.


  이렇게 <사미인곡>을 감상하다 보니, 강진이 낳은 서정시인 김영랑의 시 ‘내 마음을 아실이’가  생각난다. 1935년에 지어진 이 시에도 여인의 임 그리는 마음이 가득하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사미인곡  뒷풀이

               

  여기에서 <사미인곡>에 대한 뒤풀이를 하자.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을 짓고 나서 풍류객답게 창평의 대점 술자리에서 한 곡조 불렀나 보다. 


대점 술자리에서 운을 불러 짓다


한 곡조 길게 사미인 부르고 나니

이 몸이야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새로워라

내년에  창 앞에 매화꽃  피거들랑

강남 첫 봄소식을  임께 꺾어 부치리다.


大岾酒席呼韻


一曲長歌思美人 

此身雖老此心新 

明年梅發窓前樹  

折寄江南第一春 


  시 제목에 나오는 대점은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한재마을의 옛 이름이다. 이곳은 송강정에서 한 나절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이 곳 대점 술자리에서 술 한잔 하면서 자신이 지은 사미인곡 노래를 직접 불렀다. 작사, 작곡, 가수를 모두 겸하였으니 가히 풍류객답다. 어쩌면 거문고도 함께 탔는지도 모른다.


  이 시에도 송강의 선조 임금에 대한 연모는 끊임이 없다. 선조에 대한 일편단심은 한결 같다. 이 시에도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매화는 봄에 임에게 보내는 선물로 등장한다. 2월에 피는 매화를 꺾어 보내 강남 첫 봄 소식을 임에게 알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