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2007. 3. 21. 05:42

 

 

 

송강은 지금도 흐르는 데 - 송강정에서 (4)


  그런 쓸쓸한 마음, 임금에게서 버림받은 것 같은 심사가 맺혀져 있는 시가 야좌문견과 축요루이다.


  야좌문견(夜坐聞鵑)은 ‘밤에 앉아서 두견새 소리를 듣다’이다.


액원의 남쪽 땅이라 수목도 무성한데

꿈속의 혼 멀리 옥당으로 올라가네.

두견새 우는 소리 산죽을 짜개는가.

고신의 백발은 이 밤에 길어지네. 


掖垣南畔樹蒼蒼       魂夢迢迢上玉堂

杜宇一聲山竹裂       孤臣白髮此時長


궁궐 밖 담 남쪽 땅 창평에는 나무도 울창한데

꿈 속의 혼은 멀리 한양의 임금님 계신 궁궐로 올라가네.

두견새 우는 소리는  산에서 나는 대나무를 짜개는가.

임금님 눈 밖에 난 외로운 신하의 백발은 이 밤에 길어지네.


  이 얼마나 애절한 시인가. 꿈속에서도 임금을 찾아 혼이 궁궐로 올라가고, 두견새가 되어 대나무가 짜개지는 통곡을 하니.


  3구에 나오는 두우(杜宇)는 촉나라의 왕인 망제(望帝)의 이름이다. 그는 물에 빠져 죽을 별령을 살려주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별령은 미모의 딸을 망제에게 바쳐 환심을 사며 나라 일에 깊숙이 간여하였다. 

  결국 나쁜 마음으로 대신들과 짜고 왕위마저 빼앗고 두우를 국외로 추방하였다. 졸지에 임금 자리와 나라를 한꺼번에 잃은 두우는 원통함을 참지 못하고 죽어서 그 혼이 두견새가 되었다. 두견새는 밤마다 초나라를 못 잊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불여귀(不如歸)를 외치며 목  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이 새는 소쩍새, 귀촉도, 불여귀, 망제혼이라는 별칭도 있다.  


  고신(孤臣)은 임금으로부터 버림 받은 외로운 신하이다. 여자 같으면  잊혀진 여인이요, 창밖의 여자이다.


이어서 축요루 시를 감상하여 보자.


축요루(祝堯樓)


서울을 떠나서 천리나 되는 곳

하늘 끝 멀리서 또 가을을 맞이하네.

머리털 이미 허옇게 된 외로운 신하

홀로 축요루에 올라 임을 그리네.


去國一千里     天涯又見秋

孤臣己白髮     獨上祝堯樓


  옛날 담양의 객사 동쪽에 축요루가 있었다 한다. 이 누는 정유재란때 불타서 없어졌다 . 송강은 어느 가을 날 축요루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린다. 송강은 지금 서울을 떠나 일천리나 되는 천애(天涯)의 곳에서 외로이 지내고 있다. (천애는 천애지각의 준말로서 하늘의 끝과 땅의 귀퉁이를 의미한다. 아득하고 먼 곳에 묻혀 사는 처지를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 신하는 이제 백발이 허옇게 된 외로운 몸이다.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임금으로부터 버림받은 몸이다. 귀양이나 다름없는 낙향 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는 몸이다. 그런 신하가 홀로 축요루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서 임금을 그린다. 이 시에는 처량함, 쓸쓸함이 잔뜩 배여 있다. 항상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송강의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


  또한 선조 임금의 탄신일인데도 멀리서 시름겨워 누워있는 고신의 마음을 담은 시도 있다. 



  촌집에 거하면서 임금의 탄신을 맞은 감회


  댓잎에 해는 곱게 곱게 져가고

  산바람은 세차게 세차게 부는구나.

  오늘은 마침 임금님 탄신일이거늘

  늙은 신하는 외로이 시름겨워 누웠나니.


   村居値誕日感懷  


   竹日亭亭下 

   山飆激激呼  

   今辰會慶節 

   愁臥老臣孤    

 

  이 시에도 대나무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곳이 창평임을 알 수 있다.

해는 곱게 지는 데 산바람은 세차게 분다. 오늘이 임금님 탄신일인데 축하해 주어야 할 늙은 신하는 외로이 시름겨워 누워 있다. 임금님 생신을 천리 밖에서 외로이 맞고 있으니 신하는 수심이 가득하다. 오늘이 임금님 탄신일이기에 평상시 보다 수심이 더 하다. 선조 임금으로부터 총애 받았던 송강이 이렇게 몇 년씩 시골에 있으니 산바람도 더욱 세차게 느껴진다. 


  한편 죽록정이라고 써진 마루 한 귀퉁이 위에는 우계 성혼이 지은 송강에  대한 오언시 편액이 붙여져 있다. 제목이 ‘상 송강 안차’ (上松江 眼次)이다.


저 아름다운 송강의 물은

가을이 되면 더 더욱  맑도다.

양지 쪽 해오리는 날마다 몸을 씻으니

마음의 깨침이 남음이 있도다.


彼美松江水 

秋來徹底淸

陽鶯供日沐 

方寸有餘醒

 


 

  여기에도 송강이란 강 이름이 나온다. 아마 우계가 이곳을 지나면서 지은 시인가 싶다. 우계 성혼 (1535-1598). 소쇄옹 양산보와 같이 조광조 밑에서 공부한 성수침의 아들인 그는 경기도 파주 우계에서 살았던 재야 성리학자이다. 그의 학덕과 인품은 선조 임금도 높이 평가하여 여러 차례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정계에 나가지 않았다. 우계는 스스로가 송강의 물과 우계의 물이 같은 물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송강과 정치 노선이 같은 평생지기였다. 동인들이 정철을 곤혹스럽게 하면 이이가 나서서 구원을 하고 동인들이 율곡 이이의 과실을 지적하면 박순과 성혼이 나서서 보호하려고 한다고 할 정도로 송강과 율곡, 사암과 우계는 서로 한 배를 탄 몸이었다. 송강은 우계에게 수시로 자문을 구하였고 그의 큰 아들 기명을 우계 밑에서 공부시킬 정도로 두 사람은 사이가 친하였다. 1593년에 송강이 죽을 때 우계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걱정하면서 자기도 송강 곁으로 가고 싶다고 말 할 정도였다.